글 쓰는 20대

응원하다 보니,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팬도 아닌데 남의 성공에 울컥해 본 적 있나요?
   출처: 스포츠경향

니 이거 보고 웃는다에 계절 A+ 건다

'안원잘부' 사투리 편이 올라온 날 친구의 DM


친구가 링크를 보냈다. 짧은 영상이었다. 오래전에 좋아했던 모 아이돌의 정적인 자체 컨텐츠에 질려 이른바 '아이돌 자컨'을 본지 한참은 됐던 내 취향을 저격했다.  며칠 뒤 같은 얼굴이 내 추천 피드에 떴다. 그 다음엔 다른 계정에서, 또 그 다음엔 검색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떴다.


노래를 찾아 들은 건 한참 뒤였다. 2024년에 데뷔한 5인조 걸그룹 리센느. 그런데 지금 차트 상단에 있는 곡은 2년 전에 나온 노래다. 멜론 일간 차트 1위를 찍었고, 음악방송에서도 1위를 했다. 순서가 완전히 거꾸로였다. 밈을 먼저 알고, 다음으로 멤버를 알고, 노래는 맨 마지막에 알았다.


요즘 유행은 대체로 이런 순서로 온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이상했다. 웃으려고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 나는 팬도 아닌데. 혹시 나만 그런가 싶어서, 주변에 물어보기로 했다.


팬도 아닌데 왜 눈물이 났을까


두 사람을 만났다. 한 명은 데뷔 전부터 지켜본 오래된 팬이고, 다른 한 명은 최근에 합류한 이른바 ‘늦덕’이다. 팬덤과의 거리가 정반대인 두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 세 개를 던졌다.

이◯현,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제가 다 대학 떨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녀가 실제로 즐겨듣는 플레이리스트.

리센느를 언제 처음 알게 되셨나요?

데뷔 전부터 알았어요. 멤버 미나미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먼저 봤거든요. 환경이 열악한데도 애들이 진짜 열심히 했어요. 음악방송에 못 나올 때는 제가 다 서러웠어요. 우리 애들 노래 진짜 좋은데, 왜 아무도 안 알아주지 싶고.


마음이 크게 움직였던 순간이 있었나요?

미나미가 오디션에서 잘 안 됐을 때요. 그때 제가 고등학생이었는데, 마침 ‘수시 못 해 먹겠다’ 이러고 있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그 결과를 보는데… 진짜 다들 좋아했단 말이에요. 실력도 좋고 예쁜데 떨어졌다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진짜 이상한데, 제가 대학 떨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 뒤에는 어땠나요?

근데 결국 데뷔를 했잖아요. 그거 보고 생각했죠. 나도 잘될까? 뭐, 저도 대학은 왔으니까 다행이에요.


이◯정,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나도 볕 들 날 오나 싶었어요


리센느를 언제 처음 알게 되셨나요?

저는 유튜브 보고 알았어요. 완전 늦덕이죠. 저점 매수 실패했어요. 웹예능만 봤을 때는 그냥 웃기다고만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렇게까지 뜬다고? 싶었죠.


마음이 크게 움직였던 순간이 있었나요?

제가 응원봉까지 산 게, 멜론 1위 하고 나서 멤버들이 오열하면서 라이브 방송 켰을 때요. 그거 보고 진짜 인생사 새옹지마구나 싶더라고요. 숨도 못 쉬고 막 울어요. 


그때 본인 상황이랑 겹쳐 보인 게 있었을까요?

있었죠. 저 이번에 자격증 시험도 떨어졌거든요. 솔직히 컴활은 좀 쉽게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그런 마음이 좀 들었어요. 나도 볕들 날 오나. 비슷한 나이대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나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좀 알아줬으면, 뭐 그런 거요.


다른 자리에서 같은 말을 했다


두 사람은 접점이 거의 없다. 유입 시기도, 몰입의 깊이도, 전공도 다르다. 한 명은 2년을 지켜봤고 한 명은 몇 주를 지켜봤다. 좋아하게 된 계기도 정반대다. 한 명은 오디션 탈락을 봤고, 한 명은 1위 소식에 오열하는 방송을 봤다.

그런데 같은 질문 앞에서 답의 모양이 같았다. 둘 다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한 명은 수시 원서를, 한 명은 자격증 시험을. 저 사람의 시간이 내 시간처럼 보였다는 것.응원의 대상은 아이돌이었지만, 응원의 이유는 자기 자신에 가까웠다.


우리는 늘 같은 이야기에 운다


사실 이런 감정은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이 뒤늦게 알려졌을 때, 2021년 브레이브걸스가 해체 직전 ‘롤린’으로 되살아났을 때, 2023년 하이키의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차트를 역주행했을 때. 우리는 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했다. 그룹은 매번 달랐다. 그런데 소비되는 감정은 매번 같았다.


출처: 전자신문

공통점을 찾아보면 이렇다. 오래 버텼을 것.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을 것. 그리고 그 시간이 본인의 게으름 때문은 아니었을 것. 세 가지가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그 서사에 마음을 연다. 그러니까 우리가 소비하는 건 노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결과가 나오지 않던 시간’이다. 그 시간이 마침내 보상받는 장면을 보고 싶은 것이다. 왜 하필 그 장면일까? 답은 어렵지 않다. 우리도 지금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응원의 방향은 결국 나를 향한다


9월이다. 개강을 했고, 하반기 공채가 시작됐다. 방학 동안 세운 계획을 결산해야 하는 달이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노력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 달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우리가 남의 성공에 유독 울컥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 오래 버틴 끝에 인정받는 장면은, 아직 인정받지 못한 사람에게 하나의 증거가 된다. 그게 가능하다는 증거. 지금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게 영영 아무 일도 없을 거란 뜻은 아니라는 증거. 


그래서 응원은 이상한 방향으로 되돌아온다. 분명 남을 향해 보낸 건데, 도착지는 나였다. 물론 안다. 이게 조금 편리한 위로라는 것도. 모두가 결국 잘되는 건 아니고, 버틴 시간이 반드시 보상받는 것도 아니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본다. 알고리즘이 데려다준 30초짜리 영상 앞에서 잠깐 울컥하고, 잘됐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린다. 그 중얼거림이 정확히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아마 각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출처: 한국대학신문

#20대#덕질#역주행#리센느
댓글 0
닉네임
비슷한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