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 취향을 모르는 우리에게
너는 뭐 좋아해?
이 질문을 받으면 이상하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좋아하는 음식은 말할 수 있다. 좋아하는 가수도 한두 명쯤 떠오른다. 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묻는 순간 내가 나를 설명할 말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도 한때는 내가 취향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을 보면 자기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좋아하는 브랜드가 분명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술술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괜히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쩌면 나는 취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내 취향을 설명할 만큼 충분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닐까. 좋아하는 것을 단번에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직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한 경험까지도 ‘취향이 없다’는 말로 묶어버렸던 것이다. 취향이 뚜렷한 사람들도 처음부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선택을 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경험하고, 우연히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서 조금씩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갔을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많은 영화를 봤을 것이고, 옷을 잘 입는 사람 역시 수많은 스타일을 시도해봤을 것이다. 좋아하는 공간이 확실한 사람도 이곳저곳을 다녀본 끝에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알게 됐을 것이다.
취향은 발견하는 것보다, 경험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아직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 오히려 지금이 좋은 시기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는 대학생이라는 시간을 이용해, 조금씩 나만의 취향을 찾아가 보는 것이다.
01. 평소라면 보지 않을 영화를 골라본다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종종 익숙한 장르를 고르곤 한다. 평소 로맨스를 좋아한다면 또 로맨스를 보고, 액션을 좋아한다면 또 액션을 찾는다. 실패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향을 찾고 싶다면 가끔은 반대로 해볼 필요가 있다.

친구가 좋아하는 영화, 평소라면 절대 클릭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 한 번도 본 적 없는 감독의 작품처럼 ‘내 취향일것 같지 않은 것’을 골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별점만 남기지 말고 한 가지를 더 생각해보자.
‘나는 이 영화의 무엇이 좋았지?’
스토리가 좋았을 수도 있고, 배우의 연기가 좋았을 수도 있다. 영화의 색감이나 음악이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영화의 내용보다 등장인물이 입은 옷이나 영화 속 공간에 더 눈길이 갔을 수도 있다.
이렇게 여러 영화를 보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영화 세 편을 나란히 놓아봤더니 모두 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유독 오래된 영화의 분위기에 끌릴 수도 있다. 화려한 이야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작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때부터 ‘나는 영화를 좋아해’라는 말은 조금 더 구체적인 문장이 된다.
‘나는 이런 분위기의 영화를 좋아해.’
취향을 찾는다는 건 바로 이런 식으로 막연한 ‘좋아함’에 이유를 하나씩 붙여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02. 유행하는 옷보다, 내가 자주 입는 옷을 살펴본다
SNS를 보다 보면 갑자기 사고 싶은 옷이 생긴다. 누군가 입은 모습이 너무 예뻐서 저장해두고, 비슷한 제품을 검색하고, 결국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런데 막상 사놓고 보면 손이 잘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분명 예쁜 옷인데 이상하게 입지 않게 된다.
그럴 때는 내 옷장을 한번 관찰해보자.

내가 가진 옷 중 실제로 가장 자주 입는 옷은 무엇인지, 옷을 살 때는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거의 입지 않는 옷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나는 왜 이 옷을 자주 입지?’
편해서일 수도, 거울을 봤을 때 내가 마음에 들어서일 수도 있다.
특별히 꾸민 것 같지 않아도 나다운 느낌이 들어서일 수도 있다.
이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공통점이 보일 것이다.
처음에는 ‘나는 그냥 무난한 옷을 좋아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특정한 색을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옷보다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고, 유행하는 스타일보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에 더 끌린다는 것을 알 수도 있다.
취향은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잘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보는 능력에 더 가깝다.
그러니 이번 학기에는 유행하는 옷을 여러개 사기보다는, 지금 내 옷장에서 가장 자주 손이 가는 옷의 이유부터 찾아보자.
03. 운동을 ‘해야 하는 것’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바꿔본다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질문을 한다.
하지만 취향을 찾는 과정에서는 질문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떤 운동을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지?

누군가는 이어폰을 끼고 혼자 달리는 시간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사람들과 함께 땀을 흘리는 것이 즐겁고, 누군가는 조용한 공간에서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는 것이 잘 맞는다. 헬스를 시작했다가 재미가 없었다고 해서 운동과 맞지 않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나에게 맞는 운동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수영을 해보고, 러닝을 해보고, 클라이밍을 해보고, 춤을 배워보는 것처럼 조금씩 방식을 바꿔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운동을 통해 몸뿐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나는 혼자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힘이 나는 사람인지. 반복적인 루틴을 편하게 느끼는지, 매번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취향은 생각보다 우리의 생활 방식과 가까이 붙어 있다.
좋아하는 운동 하나를 찾는 일은 단순히 건강한 취미 하나를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04. 플레이리스트를 ‘장르’가 아니라 ‘기억’으로 정리해본다
“무슨 음악 좋아해?”
라는 질문에 “나는 그냥 다 들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라면
휴대폰의 음악 앱을 한번 열어보자.
지금까지 저장한 노래를 쭉 내려보는 것이다.
몇 년 전 유행했던 노래, 친구가 추천해준 노래, 여행 중 우연히 들었던 노래, 시험기간에 무한 반복했던 노래까지 뒤섞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나는 어떤 노래를 아침에 찾는지, 어떤 노래를 밤에 듣는지. 혼자 걸을 때는 어떤 음악을 듣고, 여행을 갈 때는 어떤 플레이리스트를 켜는지

그렇게 음악을 바라보면 ‘나는 팝을 좋아해’ 같은 단순한 취향보다 조금 더 재미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가사가 좋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음악을 들을 때 그날의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사람일 수도 있다. 특정한 계절이 되면 꼭 찾는 노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몇 년 뒤 지금의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열어보면 또 다른 내가 보일 것이다.
그때는 지금과 전혀 다른 음악을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다.
괜찮다.
취향이 변했다는 것은 내가 변했다는 뜻이고, 내가 변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경험했다는 뜻이니까.
05.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하면 ‘왜 좋은지’까지 생각해본다
어떤 카페는 이상하게 오래 머물고 싶다. 커피가 특별히 맛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이 좋을 수도 있고,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이 마음에 들 수도 있다.
나무로 된 테이블이나 오래된 의자,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좋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여기 분위기 좋다”에서 끝내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해보자.
‘나는 이 공간의 무엇을 좋아하는 걸까?’

그리고 마음에 들었던 공간을 세 곳 정도 떠올려보자. 세 공간의 공통점을 찾다 보면 의외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적은 곳을 좋아하는구나나는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을 좋아하는구나
나는 모던한 공간보다 오래된 물건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하나씩 모으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떤 분위기의 삶을 좋아하는지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취향은 꼭 패션이나 음악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 역시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대학생활을 하다 보면 나를 알아가는 일보다 나를 증명하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하고, 자격증도 따야 하고, 대외활동도 해야 하고, 인턴 경험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뭘 좋아하지...?
정작 그 질문에는 답해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대학생이라는 시기는 어쩌면 나를 가장 많이 시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전공이 맞지 않으면 다른 분야의 수업을 들어볼 수 있고, 관심 있는 동아리에 들어갈 수도 있다. 친구가 추천한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있고, 혼자 새로운 동네를 돌아다닐 수도 있다.
좋아할지 싫어할지 모르는 것들을 마음껏 경험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의 결과가 꼭 ‘좋아하는 것’일 필요도 없다.
‘이건 생각보다 별로네.’
그 한마디도 충분히 의미 있다.
그렇게 하나씩 경험하고, 선택하고, 실패하고, 다시 선택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작은 기준들이 생겨난다.
나는 이런 음악을 좋아하고, 이런 옷을 편하게 느끼고, 이런 공간에서 오래 머물고 싶고,
이런 사람들과 있을 때 가장 나답다는 기준.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취향에는 완성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오늘 좋아하는 것이 내일은 싫어질 수도 있고, 지금까지 관심 없던 것을 어느 순간 좋아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취향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만들어가는 중일 테니까.
이번 주말에는 평소와 다른 영화를 한 편 보고, 새로운 옷을 입어보고, 가본 적 없는 운동을 해보고, 낯선 음악을 들어보고, 처음 가보는 공간에 앉아보자.
그리고 마음속으로 한 번만 물어보자.
“나는 이게 좋은가?”
그 질문에 대한 작은 대답들이 하나둘 쌓이면, 언젠가는 꽤 선명한 문장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어쩌면 대학생 시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래의 나를 완벽하게 정해놓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최대한 많이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