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왜 또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십니까, '대학생'에게도 '그해 9월'은 있었습니다

당신의, 우리의 '그해 9월은,'



그렇다. '다큐 3일'의 낭만어부에게도 국문학도의 꿈이 있었고, '대학생'에게도 '9월'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저 가을의 문턱이던, 그저 새로운 계절의 시작일 뿐이던 9월이 있었다. 
언제부터 9월은 대학생들의 ‘아픈 상처’가 된 걸까. 
언제부터 9월 계획이 뭐냐는 물음은 아픈 상처에 소금 뿌리기가 된 걸까.
달력의 8월과 10월 사이에 적힌 그 한낱 ‘9’가 언제부터 우리에게 단순 숫자 이상으로 다가왔던가. 
 
“9월이 왔으면 좋겠는데... 또 안 왔으면 좋겠어.”
개강을 앞둔 동기가 말했다. 기다려지면서도 막상 오지 않았으면 하는 달. 생각해보면 9월은 늘 조금 묘하다.
9월의 순우리말 이름은 ‘열매달’이다. 추석과 단풍이 곁든 결실의 달이지만, ‘대학생’에게 9월은 마냥 평온한 수확의 시간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개강의, 누군가에게는 복학의 달이다. 또 막막한 휴학을 결정하거나 나라의 부름을 받는 학생들부터, 점점 차오르는 학년의 압박감과 함께 졸업·취업 준비라는 다음 경주를 시작하는 이들까지. 
'대학생'에게 다가올 9월의 무게는 분명히, 8월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그런 진부하고 머리가 지끈지끈한 ‘다가올’ 9월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2026년 9월 1일 0시가 아니라, 이미 달력에서 몇 번이나 지나가버린 9월
그중에서도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아 있는 ‘그해 9월’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대학생들에게 그 간 거쳐온 스무 번 넘는 9월은 시작과 끝이 유독 자주 포개지는 달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만의 ‘그해 9월’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다가올 9월에 앞서 지나온 9월의 안부를 묻다


현재가 버거울수록 미래에 대한 질문은 때로 부담스럽다. 
쉬라고 있는 방학에 쉬는 대학생은 ‘쉬었음 청년’이 된다. 뜨거운 폭염과 장마 속에서도 자격증을 따고, 
인턴 지원서를 쓰고, 공모전을 준비하고,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대학생의 '현재'이다. 
그런 그들에게 9월은 새로운 출발선인 동시에 다시, 여전히, 그리고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결국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대학생들의 현재는 ‘버겁다’. 9월을 앞두고 지치고 병든 대학생들에게 
“이번 9월에는 뭘 할 거야?”라고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대신, 잠깐 뒤를 돌아보자고 말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해 9월은,’ 어땠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동안 어떤 9월을 지나왔는지. 그때 누구와 있었는지. 무엇 때문에 웃었고, 울었는지. 
출발하기 전에 잠시 멈춰, 앞으로 얼마나 더 달려야 하는지는 잠시 접어두고,
여기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한번 돌아보자는 것이다.



당신의 그해 9월은,

 
누구에게나 유난히 선명한 한때가 있다.
좋아서 오래 붙잡고 싶은 시간이었을 수도, 당시에는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던 고된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기억은 사소한 것들에 기대어 불쑥 찾아온다.
늘 지나던 길, 자주 앉던 자리,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던 사람들. 그 시절 반복해서 듣던 노래 한 곡. 
어느 날 우연히 찍어둔 사진 한 장.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 비슷한 공기와 장소, 음악을 만나는 순간 문득,
“아, 그때 그날.” 하고 돌아오는 몇 초와 몇 분이 있다.
 
필자는 주변 대학생 가운데 그런 9월을 간직한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조금 과장을 보태, 아직도 그 시절의 기억으로 살아간다고도 말하는 사람들이다.
흥미로운 건 이야기를 부탁했을 때 그들이 망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진첩을 뒤지고, 그때 들었던 노래를 찾고, “이 이야기도 해도 돼?”라며 먼저 기억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학생은 '썰 보따리'가 맞나 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잠시 ‘그해 9월’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 노을(가명), 2022년.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달렸던, 그래서 가장 찬란하고 빛났던 시간이었어요.”
 
| 서린(가명), 2021년. 「시련기인 줄 알았던 수련기」
“유일하게 미워하고, 유일하게 사랑하지 못했던 9월이었습니다.”

 
# Q1. 당신의 ‘그해 9월’은 몇 년인가요? 그 한 달에 제목을 붙인다면요?

노을 : 2022년 9월이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달렸던 시간이라,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서린 : 2021년 9월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시련기인 줄 알았던 수련기」라고 붙이고 싶어요.
 

# Q2. 그 9월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장면이나 생각나는 순간이 있나요?

노을 : 당시 조연출로 참여했던 뮤지컬 동아리의 9월 정기공연, 지하 공연장 대기실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가장 정신없는 공연 첫날이 마침 제 생일이었어요. 축하 따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 폭우를 뚫고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사서 돌아왔는데, 스무 명쯤 되는 부원들이 깜짝 케이크와 함께 저를 맞아줬습니다.
그 후 우당탕탕 첫 공연까지 마치고 커튼콜 시간이 됐는데, 콘솔에서 객석과 무대를 한눈에 바라보니 
모든 게 너무 반짝거려서 마음이 벅찼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서린 : 대학이 인생의 전부이자 최종 목적지라고 착각했던 전형적인 고등학교 3학년 입시생의 모습이요.
조금 특별하게 표현해보자면 KF94 마스크를 끼고, 책상 양 옆에는 투명막을 세운 채 
수능특강과 수능완성을 경주마처럼 전투적으로 풀던 ‘코시국 고3’의 모습 정도겠네요.
주중에는 학교에서 자습하고, 주말에는 학원에서 제시문 면접 연습을 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하루하루 버겁게 견뎠던 기억이 납니다.



# Q3. 수많은 시간 중 그해 9월이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을 : 남들에게는 그냥 동아리로 보일지 몰라도, 두 달 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첫 정기공연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도파민이 컸던 9월이었기에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아요. 물론 동시에 곧 다음 공연을 
총연출로서 잘 올려야 한다는 부담도 커서,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했다가 우울해졌던 것 같네요.
또 그해 9월에는 잠깐 신촌에서 자취하면서 하루 종일 동아리 부원들과 시끌시끌하게 붙어 있었는데,
이후 적막한 학교 송도캠퍼스로 돌아오니 묘한 괴리감이 느껴지고 서울이 그립기도 했어요.
결국 온갖 복잡미묘한 감정을 다 느끼면서도 또 새내기답게 미팅과 술자리는 꼬박꼬박 나갔던 한 달이라, 
지금도 제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절로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서린 : 제가 지나온 수많은 9월 중 유일하게 미워하고, 유일하게 사랑하지 못한 9월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원래 후회를 잘 하지 않고, 되도록 하지 않으려는 편이에요. 
그 순간에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선택했을 테니까, 지나간 뒤의 제가 그 선택을 함부로 부정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 유독 2021년 9월만큼은 제게 해결하지 못한 미제 사건처럼 남았어요. 
무심코 떠올리는 것조차 피했고, 누군가 그 시기를 제 앞에서 언급하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따가웠어요. 괜히 상대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고요.
 

# Q4. 그 9월 중 딱 하루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인가요?

노을 : 앞에서 이야기한 9월 5일, 제 생일이자 첫 공연날이요.
아침부터 공연 준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날이 제 생일이라는 사실조차 거의 잊고 있었어요. 
그러다 폭우를 뚫고 김밥을 사서 대기실에 들어갔는데, 부원들이 케이크를 준비해 기다리고 있었죠.
감사 인사도 못한 채 정신없이 공연을 마친 뒤 커튼콜 때 바라본 객석과 무대의 그 빛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 나요. 
가장 생일답지 않은 생일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이었답니다.
그 하루 그 순간의 시끌시끌함과 벅찬 감정을, 언제라도 좋으니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서린 : 2021년 9월 2일 오후 7시 반, 부천의 서촌 공원이요.
저에게는 정말 많이 믿고 의지하는 친구가 있어요. 
‘영원’ 같은 말을 쉽게 믿지 않는 제가, 그 친구에게만은 영원한 우정을 바라게 될 만큼 소중한 친구예요.
당시 저는 대입 준비와 함께 풋사랑치고는 너무 길고 아픈 인연까지 끌고 있었어요. 
두 마리 토끼는커녕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 같아 스스로가 한심하고 싫었죠.
그날 저녁 오렌지빛 노을이 저무는 걸 보면서 친구에게 말했어요. 내 마음이 저 노을 같다고...
천천히 저물다가 마지막 빛이 사라지고 하늘과 땅이 까맣게 붙으면, 내 세상도 곧 암흑이 될 것 같다고요.
“헛소리하지 말고 내일 이 시간에 여기서 또 만나기나 해. 엄마가 나 저녁 먹으러 들어오래.”
가만히 듣던 친구가 답하더군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크게 웃었어요. 
나를 완전히 집어삼킬 것처럼 거대했던 블랙홀 같은 고민이 순식간에 작고 신 오렌지가 되는 기분 있죠.
그 순간 평생 이 친구를 누구보다 편애하게 될 거라고 예감했던,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 하루입니다.

 


― 기억의 스위치를 눌러 ―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엔, 그 시절로 단번에 돌아가게 만드는 각자만의 스위치도 있었다.

노을 
📍 송도 - 신촌행 버스에서 바라본 한강의 노을
🎧 재지팩트, 〈Life’s Like〉
“버스를 타고 졸려도 노을을 보며 ‘서울에 왔다’는 감각을 느끼고 나서야 눈을 붙였어요. 귀에서는 이 앨범이 흘러나오고 있었고요. 이 앨범과 노을은 언제나 절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것 같아요.”
서린 
📍 매일 끼던 흰색 콩나물 에어팟
🎧 TWICE, 〈Feel Special〉
"말 걸지 말라는 굳은 의지의 표현으로 끼고 등교하던 에어팟 속엔 항상 이 노래가 흘렀어요. 가사에 나오는 '‘나의 너'는 어디 있지?’ 하며 외로움을 탔었는데, 돌아보니 그때 곁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 ‘너’였더라고요. 지금도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그해의 향기가 납니다.”

그렇게 노을, 서린은 잠깐 각자의 9월에 다녀왔다. 오늘, 두 대학생은 그 시절의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 Q5.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 9월이 지금의 나에게 남긴 것이 있다면요?

노을 : 제목 그대로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 
그러니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열심히 달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졸업을 앞둔 취준생이라 그런지 무언가를 할 때마다 목적을 따져요. 
모든 것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무엇을 할지 취사선택하는 데도 익숙해졌고요.
그때의 저는 달랐어요. 과 생활, 동아리, 연애, 학업까지 모든 영역에 열정이 넘쳤던 것 같아요. 
특히 공연이 끝난 뒤 커튼콜에서 바라봤던 풍경은 제 진로에도 큰 영향을 줬어요. 
그 장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콘텐츠 기획자’가 되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거든요.

서린 : 지금의 저를 위해 대신 견디고 희생해준, 어리고 착한 아이였어요.
제 말버릇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짧은 문장인데요. 그때의 제가 지독하게 겪었던 시련들이 지금의 제게 결국 수련이 되어준 덕분인 것 같아요. 내 인생이 꼭 내 바람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됐거든요.
하지만 그걸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한동안은 2021년 9월의 제가 지금의 저를 옭아매고 괴롭힌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시절을 피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오히려 지금의 저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헌신해준 그때의 저를 인정하고, 할 수 있다면 꼭 안아주고 싶네요.
그때의 저는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은 상태인 줄도 몰랐거든요.
 

# Q6. 마지막으로, 그해 9월의 자신에게 지금 딱 한 문장만 건넬 수 있다면요?

노을 : “아직 닥치지 않은 무형의 두려움에 너무 겁먹지 말자.” - 지금의 저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에요.

서린 :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이정하, 〈낮은 곳으로〉
 


그래서....



두 사람이 기억하는 ‘그해 9월’은 서로 달랐다. 
한 사람에게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9월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각자가 지나온 하루와 감정은 전혀 다르다.

이 글에서 두 사람의 9월을 꺼내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기억만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 사람의 ‘그해 9월’을 따라온 독자가 잠시 멈춰 자신의 달력을 열고 기억 속 어느 달을 가위로 오려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기억하는 동안만큼은 잠깐 그때의 내가 될 수 있으니까.

기록할 ‘기(記)’, 생각할 ‘억(憶)’. 결국 기억은 한 번 살아낸 시간을 다시 기록하고 생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 글이, 읽는 사람의 생각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사실 굳이 나와 또래의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대학내일>에 이 글을 쓴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잠깐이나마 “그해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를 떠올려봤으면 했다. 
그 기억이 아름답다면 다시 한 번 마음껏 그리워해도 좋다. 
힘들었던 기억이라면 그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온 자신을 조금은 대견하게 바라봐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소년과 소녀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울었던, 웃었던, 소년과 소녀가 그리워 나"'. 필자가 좋아하는 곡의 노랫말이다.
오늘만큼은 잠시 멈춰, 소년과 소녀의 빛나던 두 눈과 그 뜨거운 꿈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울었던, 웃었던 날도 끝내 2026년의 9월이 되었다. 
소년과 소녀도 어느새 알바와 취업 시장을 전전하는 영락없는 대학생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대학생 모두에게,
다가올 9월을 달리기 전, 잊고 살던 나만의 '9월'로 잠시 쉼을 청해보는 것은 어떨까 조심스레 말해본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는다.


그래서,



그래서
....




당신의 ‘그해 9월’은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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