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졸업영화는 어떻게 우리의 우정을 시험할까

누구나 겪는 팀플 지옥

영화과에 들어오고 나서 이상하게 자주 들은 말이 있다.

“친구랑 작품 같이 하지 마.”


친한 사람이랑 하면 오히려 편한 거 아닌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취향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힘들 때 서로 조금쯤 봐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몇 번의 촬영을 지나고 나니 그 말의 뜻을 조금 알 것 같아졌다.

친구일 때는 몰라도 됐던 것들을, 같이 일하면 너무 많이 알게 된다.


연락이 늦는 사람인지.
급할 때 말투가 어떻게 변하는지.
자신의 일이 아닌 것도 주워서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자기 몫까지만 하는 사람인지.
피곤할 때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다정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조급한 사람이었고, 일이 틀어졌을 때 꽤 예민해졌고,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말을 속으로 자주 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사람을 알게 됐다.

그 사람도, 나도.


영화는 이상한 방식으로 사람을 알게 한다. 친한 친구였을 때는 굳이 몰라도 됐던 모습까지. 

친한 사람이 좋은 동료일 거라고 믿었다


친구와 동료는 생각보다 다른 이름이었다.

친구 사이에서는 조금 늦어도 괜찮았던 사람이, 팀원이 되면 자꾸 신경 쓰인다.

친구라면 “요즘 힘든가 보다” 하고 넘어갔을 일을, 같이 일할 때는 “왜 나만 더 하고 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내가 힘들어서 잠시 멈춘 순간에도 누군가는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 “친구로 알던 모습과, 같이 일하며 알게 된 모습은 얼마나 달랐나요?”




이 대목에서 재미있는 것은 꼭 누군가가 나쁜 사람이어서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모두 열심히 해서 싸우기도 한다.

한 사람에게는 새벽까지 일하는 것이 책임감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 자기 몫을 끝내는 것이 책임감이다.

한 사람에게 빠른 답장은 기본적인 예의고, 다른 사람에게는 급한 일이 아니라면 조금 늦게 확인해도 괜찮은 것이다.


우리는 자주 상대가 성실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서로가 생각하는 ‘성실한 사람’의 모양이 달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상하게, 우리는 또 같이 무언가를 만든다


그런데도 우리는 영화가 싫어지지는 않았다.

사람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하면서 또 사람을 모아 영화를 찍는다.


아마 다른 전공의 학생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팀플이 싫다고 말하면서 공모전에 같이 나갈 친구를 찾고, 

졸업전시가 힘들었다면서 다음 전시를 준비하고, 공연이 끝난 뒤 다시 공연을 만든다.


2025 청년 조사에서는 좋은 인간관계를 원하는 삶의 중요한 요소로 꼽은 비율이 94.7%였다. 

나는 이 숫자가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사람 때문에 그렇게 지쳐놓고도,

결국 우리는 좋은 사람을 원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고, 좋은 동료와 일하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래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한다.


어쩌면 인간관계라는 건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싫어질 만큼 가까워져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알고도 다시 좋아하게 되는 마음도 있다.


-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계속 연락하는 팀원이 있나요?"



좋은 결과물과 좋은 관계를 동시에 지킬 수 있을까


예전에는 좋은 팀이란 안 싸우는 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안 싸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싸운 뒤에도 다시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도 상대를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

힘든 순간에 ‘내가 더 많이 했다’는 계산만 남기지 않는 것.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난 뒤,

결과물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에게 먼저

“고생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영화 한 편을 만들면서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법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상처받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과 일할 때 편안한지.

내가 힘들 때 주변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는지.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어떤 동료가 되고 싶은지를 조금씩 배운다.


그래서 졸업영화는 어쩌면 마지막 과제라기보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치르는 아주 긴 팀플에 가깝다.


점수 대신 영화 한 편이 남고,

영화보다 오래 남는 사람들이 생기는 팀플.



이상하게도 가장 힘들었던 작품의 사람들을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삶에는 아직 엔딩 크레딧이 없다


촬영이 끝나면 늘 비슷한 풍경이 남는다.


조금 전까지 사람이 가득했던 공간에서 장비가 하나씩 빠지고,

테이프를 떼고,

쓰레기를 줍고,

마지막 짐을 차에 싣는다.

그러고 나면 그곳이 정말 언제 영화 촬영장이었냐는 듯 평범해진다.


나는 그 순간을 꽤 좋아한다.

무언가가 끝났다는 게 가장 정확하게 보이는 순간이라서.


그런데 사람 사이에는 그런 순간이 없다.

누군가와 멀어졌다고 해서 “여기까지가 우리의 마지막 장면입니다”라고 슬레이트를 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천천히 멀어지고,

어떤 사람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죽도록 싸운 사람과 몇 달 뒤 또 같은 현장에 서기도 한다.


졸업영화가 어떻게 우리의 우정을 시험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이렇게 답하고 싶다.


졸업영화는 우정이 얼마나 단단한지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라는 이름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서로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전부 본 뒤에도 다시 묻는다.

그래도 이 사람과,

한 번 더 같이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지.




- 영화에는 엔딩 크레딧이 있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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