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애매한 자유에도 큰 책임이 따른다
자유와 책임 사이를 헤매는 대학생들의 이야기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마블의 히어로인 스파이더맨을 대표하는 말이다. 그는 어떤 고난과 고민 앞에서도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당한다.
책임은 선택에서 비롯되고 선택은 자유에서 비롯된다.
우리 곁에도 자유와 책임 사이를 헤매는 이들이 있다. 높아진 자유도와 기준의 부재, 셀 수 없이 많은 가능성과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는 '대학생'이다.
그렇다면 현재 대학생들은 이 자유를 어떻게 소화해 내고 있을까?
Q. '대학생'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있나요?
A. 자유, 술, 다양성 (동덕여자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25학번 - D)
A. 술, 연애, 시작, 자유 (성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5학번 - K)
A. 도전, 자유, 성취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24학번 - H)
A. 자유, 자기 개발 (용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24학번 - Y)
A. 책임, 자유, 도전, 젊음 (성신여자대학교 교육학과 26학번 - S)
A. 자유, 어른, 청춘, 낭만 (홍익대학교 교육학과 25학번 - I)
여섯 명의 학생은 모두 공통적으로 '자유'를 꼽았다.
대학생으로서 자유를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인터뷰이 제공I: 아무래도 놀 때인 것 같아요. 축제 기간에 동기와 같이 밤늦게까지 달렸던 기억이 나요. 대학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 같았어요. (웃음)
S: 듣고 싶은 수업을 골라서 들을 때예요. 전공은 교육학이지만, 경영학과 수업이 궁금해서 저번 학기에 경영학개론 수업을 들어봤어요. 나름 재밌었어요!
Y: 학업이 아닌 다른 활동에 쏟는 시간이 많아질 때인 것 같아요. 평소 문화생활을 꽤 즐기는 편인데 공강 날이 생기다 보니까 영화관이나 도서관, 전시회에 가는 횟수가 더 많아졌어요.
자유롭게 내린 선택의 결과를 마주한 순간이 있나요?
인터뷰이 제공D: 한창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를 느끼던 시기에 해야 할 일을 다 무시하고 술만 마신 적이 있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처리해야 할 것들이 자연재해같이 밀려왔어요. 책임 없는 쾌락은 존재하기 힘든 것 같아요. 업보의 형태로 반드시 돌아오더라고요. (웃음)
K: 대중교통을 타고 학교로 이동하는 그 시간이 제일 아까워요. 거기에 공강 시간도 길면 하루를 내다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런데 이게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순전히 내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할 말이 없어지죠.
Y: 전 학기에 수업을 적게 들어서 들을 수 있는 최대 학점인 21학점을 다음 학기에 수강했어요. 수업 말고도 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많이 지쳤던 학기였어요.
H: 축제나 동아리, MT. 대학생들이 즐거워하는 문화에 끼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경험해 본 것들은 제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현타가 오더라고요. 제가 들인 시간, 에너지, 돈이 조금 아깝게 느껴졌어요.
이후 그 결과를 어떻게 소화했나요?
인터뷰이 제공D: 그냥 했어요.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막 하게 되더라고요. 타인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도 물론 들었지만, 그런 생각에 얽매이는 순간 끝도 없다는 걸 알기에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어요.
Y: 어떻게든 다 쳐내긴 했어요. 정말 힘들었는데 수업을 적게 들었던 그 학기에도 저는 딱히 기쁘지 않았던 것 같아서 더 슬퍼졌어요. 다음부터는 무조건 17학점 이상 들을 거라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H: 대학 생활에서 재미를 못 느낀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했어요. 대신 다른 곳에서 재미를 찾았죠.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식으로 해소했어요.
그 자유가 큰 힘이 되었나요, 큰 책임이 되었나요?
S: 학교생활을 내가 직접 설계하고 결정하는 경험을 대학에 와서 처음 하게 됐어요. 나를 찾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그만큼 모든 선택의 책임을 제가 져야 한다는 게 조금 무섭게 다가오기도 해요.
D: 타지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할 때보다 더 큰 자유를 얻었지만, 무언가를 마음 놓고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자유 혹은 여유는 오히려 많이 잃은 것 같아요. 저에게 정말 무겁고 거대한 책임을 가져다 줬다고 생각해요.
I: 책임은 매일 오지 않고, 아주 가끔 무겁고 크고 극심한 형태로 저를 찾아와요. 대학에 와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자유의 체감도예요.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죠. 나를 지적해 줄 사람이 없으니 저는 깨달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 점이 제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학생의 지금이 불안하고 답답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우리가 가진 것은 더 크고 넓은 자유를 위해 얻은 '애매한 자유'였다.
선택이 이루어지는 환경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주어지는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공식처럼 존재하는 스펙들은 있다. 그 공백의 시간을 어떻게 메울지도 스스로 판단하고 준비해야 한다. 수많은 조건을 고려하며 결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애매한 자유에도 책임이 따른다.
선택의 결과로 주어지는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의 선택이 앞으로의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책임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왔다.
히어로인 스파이더맨조차 모든 선택의 순간 앞에서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서지 않는다.
헤맨 만큼 내 땅이다.
그러니 그저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마음이 아닐까.
#대학생#자유#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