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이게 진짜 나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이 말을 하는 것조차 연습이 필요해서.

'나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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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처음 받아본 질문. 아마 대부분의 20대들 역시 도덕 시간에 앞뒤 친구들과 책상을 돌리며, 열띤 조별토론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 질문이 크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흐릿한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대답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저는 중학교 1학년이고, 남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운동이고 학교 수업 중 과학 과목을 가장 싫어해요. 그렇지만 영어는 좋아해서 나중에 크면 외교관이 되고 싶습니다.


짧고 간결한 질문에 맞는 명확한 대답. 

아니 실은, 짧고 간결한 질문이라고 생각한 저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정도면 명확하다고 생각했던 14살의 나. 

10년이 지난 지금, 스무살의 문턱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24살의 나는 이제는 저 질문이 짧고 간결하다고 생각하지도, 이에 대한 답도 쉽고 명확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어쩌면 중학교 도덕 시간에서나 대충 보던 이 질문이 아닐까? 수능을 끝마치니 마주하게 된 새로운 세상. 문을 열고 온전히 나 혼자 마주하는 모든 것들. 그 너머로 조심스레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우리는, 불어오는 바람에 사정 없이 흔들리며 나만의 중심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 아닐까. 나를 명확히 찾는 것. 부모님 옷을 입은 듯 어색하게 붙는 것이 아닌, 나에게 알맞게 붙는 것들은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것. 취향을 탐색하고 감도를 높이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시대에서 이런 것들은 하루아침에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인간관계.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간단하게 보여줄 수 있는 명함이 있지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20대의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적혀있는 글이 없다. 그렇기에 처음 만난 상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바로 '인스타 교환'이다. 



나를 3초 안에 보여줄 수 있는, 대학생이 가진 유일한 명함. 

마치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감각으로 읽는 것처럼, 글이 아닌 업로드된 프로필과 피드 분위기로 그 사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


 

명확한 설명도 대답도 없지만 보는 순간 3초 안에 어떤 느낌의 사람인지를 감각하게 한다. 






최근 대학생 사이 자리 잡고 있는 '러닝', '텍스트힙', '슬래커 코어' 등의 트렌드. 이런 트렌드들이 어떤 이유로 뜨고 있느냐를 따져보면 결국 본질은 '내가 누구인가?'하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나의 취향을 찾아 뚜렷이 하고 싶은 열망, 그 방법을 찾기 위해 힙하다는 유행과 멋있어 보이는 사람을 이것저것 따라해 보고 적용해보며 부딪히는 과정. 매력적인 사람을 빠르게 볼 수 있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빠르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인 인스타그램. 끊임없이 방황하면서도 정해지지 않은 나의 명함에 보이지 않는 나만의 글을 적으며 채워가는 이 모든 이유.


결국 "이게 진짜 나야"라고 말하는 것조차 수없이 많은 연습이 필요해서.



20대의 매력적인 명함이란 어떤 것일까.

첫눈에 확 들어오는 피드를 가진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단단해 보이는걸까.

그리고 20대가 하는 '나는 누구인가요?'에 대한 질문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타인의 선명함에 "어? 이 사람 뭐지?" 하고 빠져들었던 순간부터 나의 흐릿함 사이에서 고민을 품고 있는 사람들까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세 명의 대학생을 만나 솔직한 속마음을 들어보았다.




* 실제 대학 친구의 동의 하에 가져온 하이라이트 일부


"아무것도 안 올렸는데 이상하게 힙해 보이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 21세, 도시사회학과 25학번


Q1. 맞팔하자마자 상대의 피드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3초 구역'은 어디인가요? 

A. 저는 무조건 피드 전체 색감이랑 하이라이트 모음이요. 사진 하나하나를 막 자세히 파헤치기 전에 딱 첫 화면에서 스크롤을 내릴 때 느껴지는 그 사람 특유의 톤앤매너가 있거든요. 무채색으로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거나, 아예 게시물이 몇 개 없어서 여백으로 남겨진 피드를 보면 '어? 이 사람은 자신의 취향에 당당한 사람이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돼요.


Q2. 최근 누군가의 피드를 보고 "어? 이 사람 뭐지?" 하고 빠져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A. 얼마 전에 맞팔한 동아리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게시물은 거의 없고 하이라이트에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들만 모아뒀더라고요. 뭐랄까.. 의도적으로 연출된 셀카 한 장 없는데 그 음악들의 결과 툭 던져 놓은 배경 이미지 만으로 그 친구의 감도가 깊게 느껴졌어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나 이런 감성 좋아하는 사람이야"라고 덤덤하게 나 그 자체를 내미는 것 같아서요.


Q3. 반대로 '이건 조금 과하다' 싶어서 인위적으로 느꼈던 포인트도 있을까요?

A. 남들의 '느좋' 피드를 너무 똑같이 복사 붙여넣기 한 게 티 날 때요. 요즘 인스타에서 자주 보이는 힙한 셀카법이나 필터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그게 정작 본인의 평소 분위기랑 따로 놀고 겉도는 게 보이면 아쉬워요. 제가 보는 그 친구 고유의 매력이 있는데 그게 다 묻히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느낌이거든요. 매력적인 건 유행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결이라는 걸 그때 확 느꼈어요.


Q4. 나라는 사람을 피드로 표현하려 할 때 마주하는 현실적인 고민은 무엇인가요? 

A. 사실 비밀인데...(웃음) 제 피드는 지금 완전 뒤죽박죽 그 자체예요. 아까 말한 그 동아리 친구처럼 무심하고 힙한 톤을 따라 해보겠다고 한 적도 있는데, 제가 하니까 힙한 게 아니라 뭔가 영혼이 없는 느낌이더라고요. 분위기가 따로 놀고 겉도는 게 보여서 아쉽다 했던 친구처럼요. '나는 어떤 톤을, 어떤 목소리를 가진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못 찾으니까, 과하지 않으면서도 나만의 선명한 결을 찾아 녹여내는 게 아직 좀 어렵게 느껴져요. 이런 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요. 




* 실제 대학 친구의 동의 하에 캡쳐한 인스타 피드 일부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덤덤하게 나만의 색깔을 내는 일상이 끌려요"  | 22세, 중국어문화학과 25학번


Q1. 맞팔하자마자 상대의 피드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3초 구역'은 어디인가요? 

A. 저는 가장 최근에 올라온 게시물 서너 개를 제일 먼저 훑어보게 되는 것 같아요. 맨 먼저 보이는 것들이 이 사람이 어떤 공간을 사랑하고,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가장 최근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게 첫인상을 결정짓는 데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구요.


Q2. 최근 누군가의 피드를 보고 "와, 멋있다" 하고 감탄했던 순간이 있다면? 

A. 3월 개강 시즌에 우연히 한 선배랑 밥약을 하고 맞팔을 했어요. 집에 돌아와서 그 선배의 인스타를 구경하는데, 따뜻한 햇빛이 묻어나는 풍경 사진과 스스로 만든듯한 작은 꽃들을 모은 스크랩북, 정갈한 분위기의 독립서점 내부 같은 일상을 모아놓은 피드 몇 개가 덤덤하게 올려져 있더라고요. 말 그대로 그저 자연스러운 매력이 묻어나오는 일상의 느낌? 요즘 러닝이나 텍스트힙이 트렌드라고 해서 그걸 과시하려 하거나 일부러 나를 포장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소소해 보이는 일상들이 그 선배의 삶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게 피드 너머로 느껴졌어요. 특별한 배경 음악을 넣은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 설명하는 문구를 넣은 것도 아니었거든요. 예쁘게 찍은 본인 얼굴이 드러난 사진도 한 장도 없었고요. 그냥 꾸밈없는 보통의 하루, 그것만이 느껴져서 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잘 관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 특유의 단정함이 보여서 속으로 '와, 진짜 멋있다', 생각했습니다.


Q3. 반대로 '이건 조금 과하다' 싶어서 인위적으로 느꼈던 연출도 있나요? 

A. '나 이렇게 감각적이다, 혹은 나 이렇게 관리한다'라는 걸 강박적으로 증명하려는 듯한 피드요. 인스타용 느낌의 핫플 사진이랑 좋아보이는 화려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정작 그 사람의 보통의 하루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런 느낌이요. 사실 가장 많이 인위적으로 느끼는 포인트긴 하지만 동시에 요즘 저도 가장 많이 멈칫하게 되는 포인트기도 해요. 저 역시도 어느 순간 보면 유럽 여행이나 비싼 선물, 예쁜 크리스마스 분위기 카페처럼 자랑하고 싶은 것들만 예쁘게 꾸며서 올리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거든요. 그때 사실 현타가 많이 오긴 하죠(웃음). 이런 과시 욕구와 증명 욕구는 어쩌면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끊임없는 딜레마인 것 같아요. 


Q4. 나라는 사람을 피드로 표현하려 할 때 마주하는 현실적인 고민은 무엇인가요? 

A. 저도 그 선배처럼 최대한 꾸밈없이 나만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근데 막상 러닝 사진이나 책 구절을 올리려고 하면 '아, 남들이 보면 나도 유행 따라 하는 것처럼 보이면 어쩌지?' 하는 자가 검열이 제일 먼저 들어가는 것 같아요. 온전히 '나다움'을 드러내는 그 솔직한 기준이 무엇인지 찾는 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까다로운 문제인 것 같아요.




* 실제 대학 친구의 동의 하에 캡쳐한 인스타 피드 일부


"멋진 사람들을 따라 해볼수록 제 색깔은 더 흐려지는 것 같아 고민이에요" | 22세, 시각디자인과 24학번


Q1. 맞팔하자마자 상대의 피드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3초 구역'은 어디인가요? 

A. 피드 전체의 비주얼 구도랑 색감의 통일성이요. 전공병 인지는 몰라도(웃음) 풍경이나 사물 혹은 인물 사진이 피드 안에서 시각적으로 감각 있게 배치되어 있으면 일단 스크롤을 멈추고 유심히 보게 돼요.


Q2. 최근 누군가의 피드를 보고 "나도 이렇게 꾸며보고 싶다" 하고 끌렸던 순간이 있다면? 

A.  요즘 코르티스가 입는 평소 착장 모음이 인스타 알고리즘에 자꾸 떠요. 꾸미지 않은듯한 편한 트레이닝 복 느낌의 착장에 쨍한 색감 한두개 혹은 포인트 되는 재질이나 악세사리를 한 두 개 얹는 느낌 있잖아요. 그것처럼 착장에 무채색 톤을 유지하면서, 중간 중간 그 사람의 시선이 담긴 사물 사진을 툭툭 얹어둔 피드를 봤을 때요. 억지로 느낌 좋은 사물을 섞은 느낌이 아니라 그 사진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포인트가 있을 때가 있거든요. 그 사람의 시선 끝에 달린 것이나 구도에 공통적인 바이브가 있는. 사실 그건 제가 시각 디자인 전공을 하면서도 항상 찾기 어려워하고, 그래서 맨날 찾아다니는 포인트거든요. 그래서 그게 일상에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아 이 사람은 선명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멋있어요. 차가운 톤 속에서도 그 사람만의 감도가 명확히 살아있어서, 피드 전체가 잘 만들어진 단편 영화 같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Q3. 반대로 '이건 조금 과하다' 싶어서 인위적으로 느꼈던 연출도 있나요? 

A. 방금 말한 경우는 그게 오랜 시간 동안 다져진 자연스러운 여유라고 생각해요. 나에게 맞는 것만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 그리고 그것 이외에는 다 사치라는 여유? 하지만 이런 느낌을 노리기 위해 억지로 통일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일상을 보고 있으면.. 표현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약간 컨셉 같은 느낌이 들어 약간 거부감이 느껴질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것도 스스로를 탐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 사람의 스토리가 컨셉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으면 반대로 풀려난 모습이 궁금해지더라고요.


Q4.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려 할 때 마주하는 현실적인 고민은 무엇인가요? 

A. 진짜 솔직히 말하면, 제가 방금 갇혀 있는 사람들의 풀려난 모습이 궁금하다고 다 아는 척 말했지만(웃음) 저 역시 취향을 찾다가 어느 순간 다 섞여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게 작업을 할 때도 어쩔 수 없이 묻어나와서, 작업물을 만들어도 그냥 어디서 본 것 같은 모조품을 만든 것 같고. 매력도 하나도 없고. 많은 것을 보고 따라할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아가긴 하지만, 가끔은 너무 많은 '느좋'의 포인트들이 저를 유혹하면 정작 진짜 나만의 취향이 뭔지 헷갈리게 되는 것 같아요. 쳐내야 할 것은 쳐내고 내가 가진 것을 다듬는 것, 그 선을 찾으려고 요즘은 많이 고민하는 것 같네요.




우리는 여전히 어떤 선명함 앞에서 작아지기도, 흐릿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엉성하고 어색한 방황조차도 결국 모두 나 스스로의 결을 다듬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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