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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엔 왜 새 노트가 필요할까?

‘이번에는 다를 거야’를 장바구니에 담는 대학생들

새 학기가 다가오면 연례행사처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새 노트를 사는 것이다.


분명 집에는 지난 학기에 쓰다 만 노트가 있다. 첫 몇 장에는 제법 빼곡하게 글씨가 채워져있지만, 뒤에는 몇 자 끄적이지도 않은 채 남아있는 노트들이다. 사실 이 노트들로도 새 학기를 충분히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 학기가 시작되면 그 노트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대신 서점이나 문구점에 가서 새 노트와 필기구를 고른다. 이번에는 정말 다를 것이라 다짐하며 노트의 줄 간격도 비교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자 스터디 플래너도 구입한다. 그리고 나서 생각한다.


‘이번 학기엔 정말 열심히 살아야지’


노트 한 권 샀을 뿐인데, 왠지 다른 인격을 산 것처럼 이번에는 정말 잘 해낼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학기 별 경계선을 구매하는 것
방학이 짧은 고등학생의 시기를 지나 맞이하는 대학생에게 새학기는 꽤 분명한 경계이다.

종강과 방학을 지나 비로소 개강을 맞이하면 시간표가 바뀌고, 새로운 강의실에 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레 지난 학기를 하나의 단위로 정리한다.


“지난 학기엔 공부를 너무 안 했어”


“이번 학기엔 과제 미리미리 해야지”


지난 학기의 계획을 모두 지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개강이 찾아오면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새 시간표를 만들고, 새로운 루틴을 생각하고, 이번 학기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한다.


이때 새 노트는 꽤 적절한 준비물이 된다.


지난 학기에 쓰던 노트를 다시 펼치면 첫 장은 물론 반정도 적힌 글씨와 접힌 페이지, 중간중간 건너뛴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다. 반면 새 노트는 어떤가? 새 노트를 펼치면 깨끗하게 첫 장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새 노트를 펼치는 순간, 지난 학기의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와 관계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사고 싶은 것은 깨끗한 노트 그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감각일지 모른다.



시작하기 좋은 날, 사람은 다시 시작한다

심리학에는 '새출발 효과(Fresh Start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새해, 매월 1일, 월요일처럼 시간의 경계가 생기면 사람들은 이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구분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1월 1일이 되면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고 싶고, 월요일이면 “이번 주부터는 진짜 일찍 자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학생에게는 개강 역시 꽤 강력한 ‘시작하기 좋은 날’이다.


지난 학기에 미루고 미뤘던 과제들도, 시험 전 날의 벼락치기도 일단 종강과 함께 과거가 된다. 그리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는 순간 다시 한 번 기회가 생긴다.


이번에는 다르게 살아갈 기회


그 마음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새 노트와 새 필기구일 수 있다. 새 노트 첫장에 과목명을 적고 날짜를 쓰는 행동은 정말 사소한 일이지만, 동시에 ‘나는 지금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고 있다’는 작은 선언이기도 하다.



왜 굳이 새 것이어야 할까?


사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데에 있어 새 노트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집에 있는 노트를 써도 되고, 지난해 쓰던 필통을 그대로 들고 다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데 꼭 새로운 물건이 필요한가?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새로운 시작에 앞서 물건을 바꾼다. 운동을 시작하며 운동복을 사고, 다이어트를 결심하며 텀블러를 구매하고,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책상부터 정리하는 것처럼.


마음 속의 결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허상이지만 물건은 눈에 보인다. 그래서 새로운 물건을 마련하는 행동은 막연헌 결심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준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은 마치 연기처럼 사라지지만, 정돈된 책상 위 깨끗한 노트는 적어도 며칠 동안은 그 결심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결국 새 노트를 사는 것은 새로운 나를 준비하는 가장 작고 쉬운 의식일지도 모른다.



이번 학기도 새 노트를 샀다.


물론 새 노트를 구매한다고 사람이 하루아침에 180도 바뀌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첫 주에는 형광펜까지 쓰며 필기하다가 중간고사가 가까워지면 글씨가 점점 날아다닐 수도 있다. 야심 차게 만든 루틴대로 생활하는 것도 아마 오래가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새 학기가 되면 나는 또 새 노트를 펼친다. 지난 학기에 세웠던 계획을 완벽히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이번 학기의 계획까지 포기할 필요가 있는가?


생각해보면 대학 생활에는 이런 작은 리셋 버튼이 많다. 새 학기, 새해, 종강, 새로운 동아리, 첫 아르바이트, 취업 준비의 시작.


그때마다 우리는 지난번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겠다 스스로 다짐한다. 때로는 실패하고, 그럼에도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아직 한 글자도 적히지 않은 새 노트의 첫 장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아닐까. 그 빈 페이지에는 아직 실패한 계획이 하나도 없으니까.


새 학기에 우리가 새 노트를 사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번에는 다를거야”


그 말을 다시 한 번 믿어보고 싶어서.

#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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