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우리는 친구를 잃은 게 아니라, 서로의 시절을 지나온 걸지도 모른다

20대가 되고서야 알게 된 '시절인연'에 대하여
“우리 진짜 한번 만나자.”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말이다. 
매일 만나던 시절에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인데,
멀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자꾸 한번 만나자고 말한다.

고등학생 때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학교에 가면 있었고,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밥을 먹었고, 수업이 끝나면 함께 집에 갔다. 
내일이면 또 만날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참 쉽게 말했다.
“우리 대학 가서도 계속 만나자.” 
“우리 평생 친구 하는 거야.”
그때는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고 나서 처음 알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만큼,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일도 많아진다는 걸.


01. 매일 만나던 친구를 약속해야 만나는 사이가 됐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몇 달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여전히 자주 연락했다.

“너네 학교는 어때?” “친구 많이 사귀었어?” “우리 언제 만나?”

각자의 대학생활을 보고하듯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조금씩 대화가 줄었다.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니 시간표가 달랐고, 시험기간도 달랐다.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고 각자의 동아리와 약속도 생겼다.
누군가 단체 채팅방에 “얘들아 우리 진짜 한번 만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보내면 모두가 대답했다.

“그러게.” “날짜 잡자.” “종강하면 만나자.”

이상하게도 날짜는 잘 잡히지 않았다. 매일 만나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제는 몇 주, 몇 달 전부터 서로의 일정을 확인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근황을 대화가 아니라 SNS를 통해 알게 됐다. 친구가 여행을 갔다는 것도, 머리를 잘랐다는 것도, 새로운 사람들과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는 것도 작은 화면 너머로 알게 됐다.

싸운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각자의 하루에 서로가 등장하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그게 꽤 서운했다. 우리가 그렇게 친했는데, 이렇게 아무 일 없이 멀어질 수도 있는 걸까?

02.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래도 대학에 오면 새로운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난다. 
새터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며칠 만에 친해지고,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와 매일 밥을 먹는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멀어진 빈자리를 새로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채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환경이 달라졌으니까 당연한 거겠지. 그리고 이번에 만난 사람들과는 적어도 대학을 다니는 몇 년 동안은 계속 함께할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도 하나둘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휴학하고, 누군가는 군대에 가고, 누군가는 교환학생을 떠나고, 누군가는 시험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벌써 취업을 고민한다.

지난 학기에는 일주일에 몇 번씩 밥을 먹었던 사람인데 이번 학기에는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하기도 한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멀어진 건 단순히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20대는 어쩌면 같은 곳에 계속 머물러 있기가 가장 어려운 시기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자신의 다음 시절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03. 언제부터 친구도 ‘관리’해야 하는 사이가 됐을까?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의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잘 지내?”라는 짧은 한 줄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하자니 너무 길고, 그냥 “잘 지내”라고만 하자니 너무 성의 없어 보였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다가 무난한 안부만 몇 마디 적어 보냈다. 보내고 나서도 이게 맞았나 싶었다.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멀어질 것 같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친구에게는 괜히 미안하고, 약속을 계속 미루다 보면 혹시 나 때문에 서운한가 싶기도 하다.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그런데 모든 관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다 보면 이상한 순간이 찾아온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보다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
‘내가 먼저 연락했어야 했나?’ ‘내가 너무 소홀했나?’ ‘우리가 왜 이렇게 됐지?’
멀어지는 관계마다 이유를 찾았다. 누구의 잘못인지도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모든 관계는 오래 지속되어야만 좋은 관계일까?

04.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시절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그 인연이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조금 슬픈 말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모든 사람은 때가 되면 떠난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따뜻한 말이었다.

열여덟 살의 나에게는 학원이 끝난 뒤 같이 떡볶이를 먹으며 입시 이야기를 할 친구가 필요했다. 스무 살의 나에게는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활을 함께 헤맬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에게는 또 다른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그 모든 시절을 함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딱 한 시절의 나와 가장 잘 맞았을 수도 있다. 고등학생의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지만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고, 스무 살의 나와 매일 붙어 다녔지만 서로 다른 미래를 향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관계는 실패한 걸까?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 관계가 좋았던 시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05. 그때의 우리는 정말 친했으니까

가끔 SNS에서 예전에 친했던 친구를 마주친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여행을 가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본다. 분명 한때는 내가 저 친구의 일상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그 친구가 요즘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무슨 고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예전에는 조금 서운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생각한다. 잘 지내고 있구나.
그 친구의 지금을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서로의 가장 사소한 이야기까지 알고 있던 때가 있었고, 별것도 아닌 일에 같이 웃었던 때가 있었고,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에게 가장 먼저 연락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좋은 친구였다.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내 인생에 오래 머물고, 어떤 사람은 한 시절만 함께한 뒤 멀어진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것이다.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다. 어쩌면 다시는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평생 함께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때의 우리가 친구가 아니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 시절의 내가 너를 만나서 좋았고, 그 시절의 네가 내 곁에 있어줘서 좋았다.
그러니 지금은 서로의 하루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
우리는 친구를 잃은 게 아니라, 서로의 시절을 지나온 걸지도 모르니까.
#에세이#시절인연#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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