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땡잘부의 뿌리를 찾아서• • •
“거제, 야호~!”feat. 미나미

처음엔 그냥 웃겼습니다. 왜인지 신박(?)하고
그래서 친구랑도 별 생각없이 야호 야호 하던 저였습니다.
사투리를 쓰는 아이돌도, 갸루 콘셉트도, 멤버들끼리 티격태격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웃으려고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를 틀었다가 울컥해서 영상을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리센느의 ‘뿌리를 찾아서’ 시리즈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미나미의 뿌리를 찾아 일본으로 가고, 원이의 뿌리를 찾아 거제로 가고, 제나의 뿌리를 찾아 경주로 가는 영상들..

지금의 리센느만 보면 그저 재미있는 콘텐츠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과거를 알고 나니 그 장소들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2024년 3월 데뷔한 리센느는 꽤 오랫동안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2년 가까운 무명 시절을 보내고, 2024년에 발표한 곡은 한참 뒤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죠.
그러다 올해 ‘안원잘부’에서 멤버들의 캐릭터와 이야기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고, ‘거제 야호’라는 한마디가 밈이 되었습니다.
결국 리센느의 노래는 역주행했고, 멜론 톱100 1위까지 올라가는 그야말로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빛의 속도마냥 빠르게 스타가 되었죠.
그런데 제가 그녀들을 보며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건 ‘1위’라는 결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겐 1위가 오기 전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저는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아무 생각없이 들어갔던 방송부에서 직접 콘텐츠 기획을 해보며 뿌듯함도 느끼고 좋아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기획과 마케팅 분야로 전공을 갖고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아직도 기획하는 게 좋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학과 학생회에 올해는 기획팀장까지 달고, 전공 동아리 활동에 이어 회장의 자리까지,또 학교 홍보대사 등
이것저것 뽕? 뽑으며 나름의 저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열심히 할수록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이 전공이랑 안 맞는 건가?’
하고 싶었던 대외활동에 떨어지고, 공모전에 탈락하고, 열심히 준비한 기획이 선택받지 못할 때마다 그 생각은 조금씩 커져갔습니다.
특히 나와 비슷하게 어쩌면 내가 저 친구보다 더 열심히 전공을 살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기가 대기업 서포터즈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더 그랬습니다.

축하해주면서도 속으로는 생각했죠.
‘나는 왜 안 되지?’
‘쟤는 저만큼 앞서가는데 나는 뭐 하고 있지..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 걸까..’
학교 활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심히 기획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없거나, 내가 낸 아이디어보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가 선택될 때면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성장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와보니 매일이 비교였던 저를 발견하게 되었죠.
누군가는 대외활동에 붙고, 누군가는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누군가는 인턴을 하고, 누군가는 벌써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고 있었어요.
나는 아직 준비 중인데, 세상은 계속 결과를 내놓으라며 저를 달달 볶는 기분.
특히나 전문대학이어서 그런지 재능충들은 넘쳐났고 저는 자꾸만 ‘내가 늦은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리센느는 2년을 어쩌면 그보다 오래 전부터 기다렸다
‘안원잘부’가 재미있는 이유를 찾아보면 단순히 ‘거제 야호’라는 밈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들여다보고 좋아하고 아끼는 건 리센느의 사람 냄새 나는 모습이었던 거죠.
미나미의 갸루, 원이와 제나의 사투리처럼 각자의 출신과 개성을 캐릭터로 만들었고,
콘텐츠에 사람을 억지로 맞추기보다 멤버가 가진 매력을 먼저 끌어냈습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콘텐츠를 보는 동시에 멤버 한 명 한 명을 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죠.
실제로 팬들은 “지상파 예능보다 이 영상이 더 기다려진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단순히 완성된 아이돌의 모습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얘네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를 함께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어진 것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아직 보여주지 못한 사람들’까지 이야기의 일부가 됐다는 것입니다.
리센느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을 때도 리브와 메이는 아직 ‘연습생’ 신분으로 콘텐츠에 정식 출연하지 못했을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었고 그 조급함마저 콘텐츠가 되었죠.
생각해보면 우리도 똑같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직 합격하지 못한 사람,
아직 수상하지 못한 사람,
아직 유명해지지 못한 사람,
아직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사람.
우리는 그런 시간을 자꾸 실패라고 단정지어버립니다.
하지만 리센느를 보고 나니 생각이 조금 또 점점 바뀌고 있습니다.
그것도 서사일 수 있겠다고, 그것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뿌리라는 것을
스펙이 아니라 서사가 남는 순간
요즘 대학생에게 가장 익숙한 말 중 하나는 ‘스펙’일지도 모릅니다.
몇 개의 대외활동을 했는지,
공모전에서 몇 번 수상했는지,
어떤 기업에서 인턴을 했는지.
또 인스타에서는 도배가 될 정도로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 포트폴리오! 등의 정보성 릴스가 수도꼭지 튼 것 마냥 쏟아져 나오고 있죠.
저 역시 저를 설명할 때 제가 해온 활동부터 세어보곤 합니다.
그런데 리센느를 보면서 이상하게도 ‘2년 동안 몇 번의 활동을 했을까?’가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궁금했던 건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 2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을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결국 사람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건 결과만이 아니니까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 라는 생각이요.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게 서사다텍스트
그래서 저는 요즘 떨어질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아직 실패한 게 아니라, 아직 서사를 쓰는 중일지도 모른다.’
나만의 ‘안원잘부’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뿐
리센느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처음부터 잘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결과가 결코 그 시간을 없애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거제 야호’가 더 특별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조금은 천천히 가보려고 합니다.
오늘 대외활동에 떨어졌다면,
오늘 공모전에서 탈락했다면,
오늘 내가 만든 기획이 선택받지 못했다면,
그걸 내 가능성의 크기로 착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누군가보다 조금 늦게 합격할 수도 있고,
누군가보다 조금 늦게 내 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직 안 터졌을 뿐이니까.
언젠가 제 이야기를 돌아봤을 때
‘그때는 왜 그렇게 조급했을까?’ 하고 웃을 수 있도록.
지금의 나는 아직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지금 무명이라고 부르는 이 시간도,
나중에는 가장 빛나는 장면이 될지 모르니깐요.
여러분의 ‘아직 안 터진 순간’은 무엇인가요?
원하는 대외활동에 계속 떨어지고 있나요?
열심히 만든 기획이 선택받지 못했나요?
친구보다 뒤처진 것 같아 조급한가요?
괜찮습니다.
당신의, 우리의 이야기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직 그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