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하긴, 서브컬쳐아티스트야.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한때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코스프레요.”라고 말하는 순간, 제 취미보다 저를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굳이 주변에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캐릭터의 가발을 쓰고, 의상을 입고, 메이크업을 하고 사진을 찍는 일은 저에게 너무나 즐거웠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특이한 취미’ 혹은 ‘현실과 동떨어진 취미’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한때는 숨기고 싶었던 취향이 오히려 나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키워드가 되기도 합니다. 남들과 똑같아지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내가 오랫동안 좋아해온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하나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저는 그 변화를 코스프레를 하며 직접 경험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에 진심을 다했더니, 사람이 남았습니다

제가 코스프레를 시작한 건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었고, 한 번쯤 그 캐릭터가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가발을 쓰고, 의상을 준비하고, 캐릭터의 메이크업을 연구하고, 포즈와 표정을 연습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집에서 사진을 찍어보는 정도였지만, 점점 애니메이션 행사에 참여하고 전문 스튜디오를 빌려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 촬영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특히 코스프레 촬영을 계기로 알게 된 사진작가들과 여러 번 작업하면서 친분이 생겼고, 어느 순간 제 주변에는 제가 학교에서 만나지 못했던 또 다른 사람들이 생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인연은 생각보다 훨씬 ‘현생’에 도움이 됐습니다.
학교에서 기업 실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진 촬영이나 콘텐츠 제작에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 저는 코스프레 촬영을 하며 알게 된 사진작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흔히 “취미는 취미고 공부는 공부”라고 생각하지만, 저에게는 두 세계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순간이었습니다.
덕질하다가 인맥이 생겼고, 그 인맥이 실무가 됐습니다.
이쯤 되면 취미인지 커리어 개발인지 저도 가끔 헷갈립니다. 😅😅😅
“그걸 해서 뭐가 남아?”에 대한 대답

물론 코스프레를 한다고 해서 매번 거창한 무언가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촬영 전날에는 의상을 준비하고, 가발을 손질하고, 메이크업을 연습합니다. 촬영 당일에는 몇 시간씩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사진을 고르고 보정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전의 저는 이런 취미를 설명할 때 괜히 변명부터 했습니다.
“그냥 취미예요.”
“시간 날 때만 해요.”
“공부에 지장 안 가게 하고 있어요.”
마치 취미에도 자기소개서가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반드시 시간을 버리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코스프레를 하면서 저는 사진을 보는 눈을 키웠고, 사람들과 협업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촬영 콘셉트를 고민하고, 원하는 결과물을 설명하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만들었고,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먼저 움직이는 용기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됐습니다.
취미가 나를 무대 위에 다시 세웠습니다

저는 원래 무대에 서던 사람이었습니다.
실제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콩쿠르에 출전해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상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겪으며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타 학과에 새롭게 입학한 뒤에도 저는 계속 고민했습니다.
‘나는 이제 무엇을 잘하지?’
‘내가 좋아하는 건 대체 뭘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코스프레는 의외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표정과 몸짓을 고민하고, 사진 속에서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하고, 하나의 콘셉트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제가 무대에서 경험했던 것과 닮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무대를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제 꿈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만든 캐릭터로 대회에 나갔습니다

코스프레를 계속하다 보니 더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단순히 사진을 남기는 것을 넘어, 하나의 캐릭터를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직접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지역에서 개최하는 코스프레 대회에 출전했고, 본선 진출이라는 결과도 얻었습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의상과 가발, 메이크업만 신경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캐릭터의 움직임과 표정, 등장부터 퇴장까지의 흐름을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관객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기획하고, 준비하고, 연습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취미와 현생은 꼭 서로 반대편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숨기던 취향이 나를 설명하는 무기가 되기까지

과거에는 서브컬처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사회와 조금 동떨어진 사람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모든 편견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아이돌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게임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빈티지 카메라에 미쳐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좋아하느냐’보다 ‘그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가느냐’가 아닐까요.
남들과 똑같은 것을 잘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좋아해온 것, 남들은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그것을 꾸준히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은 나만의 언어가 됩니다.
저에게는 그 언어가 코스프레였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사진작가라는 인연을 얻었고, 학교 프로젝트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회에 도전해 새로운 경험을 얻었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이렇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취미가 뭐예요?”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코스프레요.”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 것.
좋아하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결국 나 자신까지 성장시키는 것.
저는 그것이 지금 시대의 취미가 가진 새로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취미가 꼭 생산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으니까요.
다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나도 몰랐던 나의 장점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혹시 아직도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취미가 있다면, 너무 빨리 숨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 한 가지가,
어쩌면 아무에게도 없는 당신만의 무기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