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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계획도 수강정정 되나요?

이번 학기, 나를 수강신청합니다
새 학기를 앞두고 시간표를 짤 때면 꽤 신중해진다. 강의 시간과 이동 거리, 과제와 시험 일정을 비교하며 여러 번 수정한 끝에 시간표를 완성한다.

하지만 시간표 밖은 더 빽빽하다.

학점, 토익, 자격증, 대외활동. 원하는 미래에 가까워지려면 무엇이든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아 계획을 계속 추가했다.



지난 학기에는 처음으로 근로를 시작하며 수업과 과제까지 빽빽한 일상을 보냈다. 세워둔 계획 중에는 지키지 못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한 학기를 돌아보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으며 학교와 과제에 관해 이야기했던 순간들이었다.


계획표에는 없었지만, 그 시간도 분명 내가 대학생활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만 집중한 나머지, 정작 지금의 나를 계획표에서 빼놓고 있었다.

계획을 지키지 못한 날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일까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뒤, 혼자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활동을 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자유가 생긴 만큼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커져 더 많은 계획을 세웠다.

지난 학기의 사진을 돌아보다가, 오래 기억에 남은 순간은 계획표 밖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친구와 걸으며 나눈 이야기, 가족과 함께한 저녁, 혼자 골목을 걷다 멈춰 찍은 사진. 계획대로라면 다른 일을 했어야 할 시간이지만, 그 순간들을 통해 나는 어떤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무엇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인지 알게 됐다.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했지만, 내가 지나온 장면에는 이미 답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내 취향은 거창한 결심보다 사소한 선택 속에서 먼저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새로운 과목을 신청했다

이번 학기에도 해야 할 일은 많다.
좋은 학점을 받고 싶고, 영어 공부도 꾸준히 하고 싶다. 관심 있는 분야의 활동에 참여하고, 내 생각이 담긴 콘텐츠도 만들어보고 싶다.

다만 이번에는 계획을 줄 세우는 방식부터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성과를 위한 일정 사이에 ‘나를 알아가는 경험’을 한 과목처럼 넣어보는 것이다. 계획표에는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나를 발견하고 싶은지도 함께 적는다.

이 과목에는 정해진 강의실이 없다.
친구와 걷는 길이 강의실이 되기도 하고, 가족과 마주 앉은 식탁이 되기도 한다. 처음 가본 동네와 혼자 머문 카페, 쉽게 끝나지 않는 고민도 수업의 일부다.

교재는 내가 찍은 사진과 그날의 기록이다.
시험 대신 경험이 끝난 뒤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건넨다.

‘오늘 나는 어떤 순간에 오래 머물렀지?’
‘생각보다 좋았던 것은 무엇이었지?’
‘다시 해보고 싶은 선택은 무엇이지?’

곧바로 정확한 답을 내릴 필요는 없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도 일단 기록해둔다. 취향은 한 번의 질문으로 찾아내는 정답이 아니라, 여러 경험 사이에서 반복되는 선택을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 나의 진짜 수강 과목

전공필수: 미래를 준비하는 법

학점과 자격증, 대외활동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다른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기보다, 이 경험이 나에게 왜 필요한지 먼저 묻고 싶다. 많이 해내는 것보다 나의 관심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이 과목의 목표다.


교양선택: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법

친구와 보낸 시간은 공부하지 못한 시간이 아니었다.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떤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친구가 되고 싶은지 배웠다.


계절학기: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며, 익숙해서 지나쳤던 마음을 다시 바라봤다. 미안함과 고마움, 독립하고 싶으면서도 기대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나에게 필요한 공부였다.


재수강: 계획대로 하지 못한 나를 대하는 법

이번 학기에도 모든 계획을 지키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키지 못한 계획에도 내가 지친 이유와 나에게 맞지 않는 방식이 남아 있다. 재수강은 실패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다시 시도해보는 일이다.

무학점 과목: 아무 목적 없이 걷기

나는 유명한 관광지보다 골목과 창가처럼 쉽게 지나치는 장면에 오래 시선이 머문다. 목적 없이 걷고 사진을 찍는 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


좋은 학기는 많은 계획을 끝낸 학기일까

좋은 여행이 많은 장소를 방문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듯, 좋은 학기도 많은 계획을 해내는 것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친구와 보낸 시간, 가족과 나눈 대화, 혼자 걸으며 발견한 장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경험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해낸 일의 개수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견한 나의 모습도 함께 돌아보고 싶다.

수강정정은 처음의 선택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직접 경험한 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을 다시 선택하는 과정이다. 계획을 바꾸거나 모두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방향을 잃은 것은 아니다.

이번 학기의 성적표에는 학점만 남겠지만, 나만의 성적표에는 새롭게 해본 일과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람, 그 속에서 발견한 나를 기록하고 싶다.

계획을 모두 지키지 못한 학기도, 나를 하나 더 발견했다면 충분히 잘 보낸 학기일 수 있다.


#계획표#일상#개강#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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