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드라마는 클립으로 보는 거 아닌가요?

<환승연애>는 숏폼으로 보는 게 더 재미있잖아요

여러분은 최근 영화나 드라마를 직접 보지 않고도, 그 내용을 거의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느낀 경험이 있으신가요?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숏폼으로 돌아다니는 수많은 클립을 통해 마치 작품 하나를 통째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지금의 세상은 숏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0·20대 세대 사이에서 숏폼의 영향력은 이미 방송을 훨씬 뛰어넘은 지 오래입니다. 이들에게 숏폼은 더 이상 새로운 미디어가 아니라 일상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지난 8월, 여론조사 매체 <컨슈머인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영화나 드라마를 완전히 정주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10대(47%)’보다 ‘숏폼 클립을 선호하는 10대(62%)’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전히 방송 풀버전을 선호하는 30·40대 세대(61%)와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입니다. 현재의 10·20대 세대는 콘텐츠 전체의 덩어리보다 콘텐츠의 짧은 조각을 선호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음악, 예능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최근의 현상을 ‘스니펫(Snippet)의 시대’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스니펫은 본래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작은 정보 단위’ 혹은 ‘재사용 가능한 코드 블록’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전체보다는 작은 조각이 의미를 지니고, 독립적으로 퍼져 나갔다가 다시 재결합하는 ‘숏폼의 시대’를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맥락은 거세되고, 임팩트는 강화되다

1분기에는 가짜 세계관에 몰입하고(Mockverse), 2분기에는 여행을 스낵처럼 소비하며(Snack Trip), 3분기에는 마이너한 취향에 열광하던(Niche Fever) Z세대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콘텐츠를 단순히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 조각만을 선별해 수집한 뒤 필요에 따라 재조립합니다.

맥락이 중요하게 작동하던 시대는 저물고, 그 자리를 직관적인 결과와 감각적인 임팩트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긴 서사를 끝까지 견디기에는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유행 역시 빠르게 소멸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유저들의 인지는 더 짧고, 더 강렬한 스니펫을 요구합니다. 이번 4분기 레터에서는 틱톡의 10·20대 유저들이 스니펫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파편화된 스니펫이 어떻게 글로벌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스포일러로 콘텐츠를 홍보하는 시대

콘텐츠를 홍보하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트레일러, 즉 예고편입니다. 오늘날에도 극장 광고나 TV 광고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소개할 때 예고편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방식은 궁금증을 자극해 전체 콘텐츠로의 유입을 유도하는 구조로, ‘핵심’을 숨긴 채 ‘핵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반면 최근 매체들이 더욱 주목하는 홍보 방식은 결론을 먼저 제시하며 유입을 유도하는 스니펫 중심의 마케팅입니다. 4분기 OTT 예능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 역시 TVING의 <환승연애 4>입니다. TVING의 틱톡 채널에서는 매회 신규 회차가 공개될 때마다 2~3분 분량의 클립을 약 15개씩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클립 한 편의 조회수가 적게는 3~4만 회, 많게는 70만 회를 상회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들 클립이 본편을 유도하기 위한 예고편이 아니라, 본편의 하이라이트만을 선별해 보여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가능해졌습니다. 이 정도에 이르면 프로그램의 화제성이 본방송보다 숏폼 플랫폼에서 더 크게 형성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아예 〈싱어게인〉 클립만을 모아 운영하는 JTBC의 공식 채널(@singagain2025)

이처럼 ‘하이라이트 중심’의 콘텐츠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분야는 예능이나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틱톡 채널을 운영 중인 일부 뉴스 매체들은 숏폼 콘텐츠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채널 유형에 속합니다. 이 경우 캐스터나 아나운서가 직접 발화하는 장면을 담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자료 영상과 이미지, 그리고 자막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편집한 짧은 영상만으로도 충분한 전달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뉴스 매체들 가운데, 100% AI를 활용해 제작한 숏폼 콘텐츠를 매일 업로드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메인 뉴스 영상 한 편을 자동으로 여러 개의 숏폼으로 분할하고, 편집까지 수행하는 AI 툴을 자체적으로 개발한 매체도 있습니다. 이는 사용자들이 정제된 보도 장면 자체보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인가”를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소비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이시한 박사는 “콘텐츠의 소비 목적이 감상에서 소셜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과거에는 개인적인 감상을 위해 콘텐츠를 시청했다면, 오늘날의 Z세대는 소셜 공간에서의 대화와 참여를 위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정주행’보다는 대화에 필요한 정보 패키지로서의 콘텐츠가 요구되고, 핵심만을 요약해 전달하는 형식이 선호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결과 중심의 소비 방식은 Z세대가 콘텐츠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인 ‘탐색 비용(Search Cost)의 최적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민병운 교수는 Z세대가 본질적으로 ‘시간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과거에는 정보 제공자가 이미 선별한 콘텐츠를 그대로 수용하면 되었지만, 콘텐츠가 과잉 공급되는 오늘날에는 그 선별의 부담을 개인이 직접 감당해야 합니다. 그 결과, 시간이라는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콘텐츠를 2배속이나 3배속으로 시청하거나, 아예 숏폼만으로 소비하는 선택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풀버전을 굳이 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핫하거나 재미있는 부분을 대부분 클립으로 업로드하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클립을 본 뒤 풀버전을 찾아봤을 때도, 대개 클립으로 본 장면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굳이 다른 장면까지 볼 필요는 없겠다고 느꼈거든요. 시간은 없지만 내용은 알고 싶다는 이유도 컸던 것 같아요.
– 강유나, 24세

이처럼 숏폼이 생활의 일부가 된 Z세대는 더 이상 “끝까지 보면 재미있을까?”라고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하이라이트 스니펫을 통해 콘텐츠의 고점을 먼저 경험한 뒤, 필요에 따라 나머지 서사를 보충하는 순서로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민병운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기승전결’이 아닌 ‘결기승전’이라는 서사의 역전 구조로 설명합니다. 결론을 먼저 감상한 뒤, 그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본편을 다시 찾는 방식입니다. 〈환승연애 4〉의 클립이 하이라이트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맥락이 생략된 챌린지 문화

기호학에서는 의미와 형식을 분리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연구 방식으로 여깁니다.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 즉 ‘형식’을 시니피앙(Signifiant)으로, 그로 인해 떠오르는 ‘의미’를 시니피에(Signifié)로 구분해 명명했습니다. 최근 숏폼 플랫폼에서 유행하는 스니펫은 대부분 시니피앙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형식만 남은 콘텐츠는 의미로부터 분리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특히 ‘챌린지’ 문화가 활발한 틱톡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4분기에 유행한 챌린지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는 〈구멍난 가슴〉 챌린지입니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가수 남수란의 〈구멍난 가슴〉이라는 곡이 중국어 번역 제목(穿孔的新)과 함께 틱톡에서 확산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출처와 맥락이 명확하지 않은 이 유행은 국내를 넘어 해외 유저들에게까지 퍼졌고, 그 결과 3,000개 이상의 숏폼 콘텐츠가 생성되었습니다.

NCT와 아일릿까지 참여하고 있는 구멍난 가슴 챌린지

사실 틱톡에서 유행하는 챌린지의 대부분은 이처럼 이해를 요구하지 않은 채 확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병운 교수는 틱톡의 챌린지나 밈이 맥락이나 의미보다 ‘시각적·청각적 리듬’을 더 중요하게 작동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짧은 영상’이라는 포맷의 특성상, 맥락보다는 음성, 리듬감, 그리고 직관적인 표정과 행동이 재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틱톡이 글로벌 트렌드를 이끌며 국가 간 유행의 경계를 허무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틱톡의 챌린지 문화는 ‘비언어적 공감’, 즉 별도의 의미 해석이 필요 없는 스니펫을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이시한 박사는 최근의 밈이 의미를 전달하는 콘텐츠라기보다는, 참여와 소속감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밈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소속감을 공유하게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선을 긋는 기능을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밈의 의미나 출처가 아니라, 이를 함께 공유하는 ‘우리’라는 집단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무맥락 밈은 오히려 사회적 의미와 사회적 맥락을 더욱 강하게 지닌 형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4분기에 유행한 또 다른 챌린지 가운데 하나는 일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Yosho Hai〉 챌린지입니다. 일본의 방앗간에서 새해에 떡을 찧을 때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내는 소리를 BGM으로 리믹스해 확산된 사례로, 의미나 설명 없이도 리듬과 동작만으로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스니펫 기반 챌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또 하나의 해외 음원 챌린지로는 〈드근드시〉 챌린지가 있습니다. 이 챌린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최소 네 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합니다. 화려한 돌려차기로 시작해 카메라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이어서 현란하게 스텝을 밟는 구성으로 전개됩니다. 전후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 챌린지는 러시아어권 크리에이터 @amishq1suv처음 업로드한 영상을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사례입니다.


원곡은 키르기스스탄의 그룹 AK ORGO BOYS의 〈Дык Кын Дыш〉라는 곡으로, 우리말로 읽으면 대략 ‘디큰 디시’ 정도로 발음됩니다. 이 ‘디큰 디시’라는 표현은 한국어의 ‘쿵짝 쿵짝’, ‘둠칫 둠칫’과 같은 의태어나 추임새에 가까운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명확한 서사적 맥락은 생략되어 있지만, 감각적으로는 일정한 의미가 전달되는 스니펫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이재흔 연구원은 이러한 현상이 의미나 맥락보다 콘텐츠가 주는 임팩트와 현상이 우선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BGM으로 활용된 음악의 가사 의미를 해석해 주는 ‘이 노래가 실은 이런 내용이었다’는 형식의 콘텐츠가 오히려 후속 콘텐츠로 확산되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이는 하나의 스니펫이 먼저 소비된 뒤, 그 의미를 보완하는 해설형 콘텐츠가 뒤따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정체성 소비도 결과 위주로

시대를 막론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단정 짓는 콘텐츠는 언제나 인기를 끌어왔습니다. 스니펫 콘텐츠를 선호하는 최근의 트렌드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유저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이러한 욕구 속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트렌드가 바로 MBTI와 같은 ‘자기 확인’ 콘텐츠입니다.

과거에는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경험과 서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능력과 경험을 중시하며 자신의 자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기성세대 사이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과거 싸이월드와 같은 SNS에서 유행했던 ‘100문 100답’ 콘텐츠는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최근의 트렌드는 이처럼 구구절절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Z세대는 “나는 INFP고, 이런 옷을 입어”와 같이 하나의 결과값으로 자신을 설명합니다. 복잡한 이야기 대신, 한 번에 인식 가능한 직관적인 라벨을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예전에 혈액형을 물어보던 것처럼, 이제 MBTI는 기본적인 자기소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처음 만난 사람의 성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서 필수가 되어 가는 것 같거든요. 또 서로의 MBTI를 맞혀 보거나 궁합이 잘 맞는지를 이야기하면서 금방 가까워질 수 있는 장치가 되기도 하고요.
- 정민경, 21세

이는 단순한 자기소개 방식의 변화가 아닙니다. 스니펫 모드에서는 정체성 역시 효율적으로 큐레이션됩니다. 지금의 Z세대가 자신을 정체화하는 방식은 MBTI, 코어(패션), 그리고 취향입니다. 이들은 이를 말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숏폼이나 피드처럼 지금의 세대가 합의한 ‘인증된 조각(스니펫)’을 제시하는 것이, 자신의 내면을 구구절절히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민병운 교수는 이러한 Z세대의 방식이 시간을 아끼고 효율을 중시하는 그들의 소통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설명합니다. “나는 이런 이유로 감성적이고, 영화를 좋아하기도 해”라고 말하는 대신, 영화 〈애프터썬〉의 포스터 한 장을 올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100문 100답’이 한 사람을 설명하는 ‘로그 파일(log file, 모든 데이터 정보)’이라면, MBTI로 대표되는 키워드나 이미지는 ‘메타데이터(metadata, 데이터를 설명하고 구조화한 데이터)’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최근 틱톡에서 유행 중인 MBTI–OUTFIT 콘텐츠 역시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MBTI 결과값과, 개인의 취향을 데일리 패션으로 표현한 OUTFIT 콘텐츠가 결합된 형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이미 도출된 결과값을 통해 자신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형식의 챌린지는 유저에게 확증 편향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나와 유사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의 취향을 공유하며 “역시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그 과정에서 공감과 안정감을 얻습니다. Z세대가 자신을 설명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구구절절한 서사보다, 한눈에 이해 가능한 직관적인 스니펫입니다.

2025년에 다수 발표된 정체성 및 트렌드 관련 연구 역시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합니다. 불확실성이 큰 현대 사회에서 Z세대는 MBTI와 같은 구조화된 성격 프로필을 활용해 자아를 분류된 스니펫의 형태로 관리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들은 이미 정해진 라벨 가운데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를 빠르게 이해하고 타인에게도 쉽게 전달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4분기 틱톡에서 유행한 ‘첫눈 AI 필터’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해당 필터의 3단 트립틱 구조는 “눈을 봐서 행복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첫눈을 즐기는 나의 모습이 이렇게 예쁘고, 잘생겼다”는 시각적 스니펫을 공유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틱톡과 같은 SNS 플랫폼에서는 이러한 AI 필터와 그리드가 자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스니펫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SNS에 콘텐츠를 업로드할 때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보다는 “내가 이런 모습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어디에 올리는지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모두에게 공개된 SNS의 경우에는 셀카를 올릴 때 보정을 하거나, 꾸민 듯한 OOTD를 연출하는 방식으로 보여지는 제 모습에 신경을 많이 써요.
- 최인영, 25세

재사용과 확장에 최적화된 스니펫

스니펫은 더 이상 특정 시공간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코드 조각처럼, 스니펫은 어디에든 끼워 넣을 수 있는 ‘모듈’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의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쉽게 확산되기도 하고, 특정 문화권에서 지닌 의미가 다른 문화권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띠며 작동하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구멍난 가슴〉 챌린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처럼 작동하는 스니펫은 맥락이 제거된 대신, 무한한 재사용성과 확장성을 갖습니다.


올해 하반기 가장 화제가 된 밈을 꼽자면, 아마 퐁귀의 ‘골반통신’일 것입니다. 골반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이후 새로운 사랑에 빠지게 되는 크리에이터 캐릭터 본인의 서사를 풀어내며 인기를 얻은 스토리텔링 콘텐츠입니다. 이 ‘골반이 움직이지 않는’ 밈은 전체 이야기를 분리해 하나의 스니펫으로 작동하며, 다른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와 결합되는 방식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나아가 이 스니펫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BGM으로 사용된 AOA의 2014년 곡 〈짧은 치마〉가 다시 주목받는 역주행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콘텐츠는 ‘챌린지’로 시작된 밈이 아닙니다. 푸더바 매거진에서 진행한 퐁귀 인터뷰에 따르면, 퐁귀 본인은 숏폼을 촬영하면서 직접 멘트를 하는 것이 다소 낯간지럽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이에 AI를 활용해 말풍선과 배경을 제작하고, 그린스크린 앞에서 춤추는 모습을 그 위에 합성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콘텐츠가 바로 ‘골반통신’ 콘텐츠의 시작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생성된 콘텐츠의 ‘부자연스러운 조화’는 틱톡 유저들로부터 컬트적인 지지를 얻었고, 결국 하나의 매력적인 스니펫으로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골반통신> 원조 콘텐츠 자체가 딱히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밈이 확산되면서 패러디가 되고, 여러 방식으로 소비되면서 웃기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무려 2016년쯤 유행했던 노래와 얼척없는 메시지 내용이 뒤섞이면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맥락의 콘텐츠가 됐고, 끝도 없이 황당해지는 점에서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지 않았나 싶어요.
– 박은솔, 23세


또 하나의 사례는 〈매끈매끈하다 매끈매끈한〉 밈입니다. 국내에 거주 중인 댄서 겸 크리에이터 카니가 한국어 단어를 리드미컬하게 외우는 예능 장면에서 출발한 이 밈은, 해당 장면과는 분리되어 하나의 리듬 스니펫으로 독립했습니다. 이후 이 밈은 틱톡 크리에이터 ‘행복한피자빵’이 리믹스해 음원으로 활용하면서 확산되었고, 수많은 아이돌과 크리에이터들이 이를 챌린지 형태로 소비하기 시작하며 또 다른 유형의 스니펫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스니펫의 강력한 재결합과 확장성은 틱톡이 글로벌 플랫폼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기도 합니다. 유저들은 원본의 메시지를 보존한 채, 자신의 환경에 맞게 스니펫을 재조립하고 이를 증폭시킵니다. 이른바 ‘개인화된 리믹스’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원본의 훼손이라기보다는 재구성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재구성된 스니펫은 국경과 시간, 그리고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습니다.

이러한 스니펫의 확장 방식은 콘텐츠 영역을 넘어 푸드 트렌드에서도 유사하게 관찰됩니다. 이번 4분기에 큰 인기를 끌었던 ‘두바이 쫀득 쿠키(일명 두쫀쿠)’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두쫀쿠는 2024년에 유행한 ‘두바이 초콜릿’에서 이미 검증된 핵심 요소인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크림의 조합을 차용하되, 한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쫀득한 식감’을 가미해 탄생한 새로운 디저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두바이’라는 지리적·문화적 맥락이나 원본 레시피의 서사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두쫀쿠는 두바이 업체가 아닌, 한국의 '몬트쿠키'가 처음 개발한 디저트입니다. 이 역시 두바이 초콜릿의 카다이프, 그리고 피스타치오 크림이라는 두 가지 스니펫을 차용해 새로운 디저트 트렌드를 형성해 낸 사례입니다. '구하기 힘든 디저트'의 대명사가 된 두쫀쿠는, 디저트 가게 뿐 아니라 국밥집, 편의점까지 영역을 넓히며 다양한 곳에서 판매 중입니다.

숏폼에서는 이 두쫀쿠를 자르는 단면, 늘어나는 식감, 한 입 베어 무는 장면 등을 보여주는 식으로 다양한 감각적 체험이 공유됩니다. 두쫀쿠는 디저트 업계에서는 푸드 스니펫의 조합으로 탄생한 하나의 완성품이자, 동시에 숏폼 환경에서는 여러 기획으로 재가공될 수 있는 모듈형 스니펫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스니펫의 시대에는 ‘절대적인 유행’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유행의 가능성을 지닌 수많은 조각들이 떠다니다가, 서로 맞닿는 순간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최근의 트렌드가 조립되고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스니펫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숏폼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역을 꼽자면, 〈난장판 스튜디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닛몰캐쉬, 일오팔, 타이섭 등 2020년대 숏폼 플랫폼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모인 크루죠. 이들 쟁쟁한 크리에이터 중에서도 특히 ‘태순이’는 다소 충격적인 모습으로 Z세대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진 바 있는데요. 압도적인 부캐 태순이를 보유한 크리에이터, 타이섭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습니다.

본캐가 너무나도 멀쩡한 분이셔서 놀랐습니다. 타이섭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두에게 행복을 주고 싶은 크리에이터, 타이섭입니다. 여러분에게 편한 동네 형, 오빠, 삼촌 같은 느낌으로 다가가려고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웃음)

태순이를 빼놓고는 우리가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태순이 역시 ‘모두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탄생한 캐릭터였을까요?
사실 그런 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근데 맞는 것 같기도 해요.(웃음) 사실 이 캐릭터가 탄생한 이유는 공약 때문이었어요. 당시 크리에이터 사이에서 “어느 정도 팔로워가 생기면 메이드복을 입겠다!”는 공약이 유행했죠. 그런데 이 ‘메이드복’이라는 게 다소 선정적인 이미지도 있고, 단순히 메이드복을 입는 것만으로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좀 색다르게 시도해 본 게 계기였습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그리고 유튜브까지 다양한 채널을 보유하고 계신데요. 각 채널별 콘텐츠 전략이 다른 것 같아요.
오래전부터 다르게 활용하던 게 습관이 되었달까요? 당시에는 쇼츠, 릴스, 틱톡 각각 확산에 유리한 알고리즘이 전부 다르게 적용됐거든요. 틱톡의 경우 기획된 콘텐츠, 예컨대 꽁트나 리뷰 등 다양한 숏폼 기획이 고루 노출되던 반면, 릴스는 챌린지 같은 춤, 안무 유형의 콘텐츠를 많이 밀어줬죠.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두 채널의 성향이 다르게 고착화된 것 같아요.

그러면 그 계획은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고 보면 될까요?
요즘은 모든 숏폼 플랫폼이 유사한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여러 채널에 같은 콘텐츠를 두루 내보는 테스트를 해 보려고요. 다만 주력 소비층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아무래도 틱톡 유저층이 더 젊다 보니 그런 부분은 신경을 쓰려고 하고 있죠.

어떤 부분에서 틱톡의 차별점을 체감하고 계신가요?
제 캐릭터 특성상 10·20대 팬덤이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틱톡에서 달리는 댓글이나 반응을 보면 조금 더 효능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죠. 틱톡 유저들은 대체로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댓글도 덜 자극적이죠. 혹여 악플이 달리더라도 틱톡 유저들은 귀엽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롱폼 영상을 시도하셨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업로드를 안 하시는 것 같지만요.
일종의 테스트였어요. 어느 정도 저희 크루가 인지도가 쌓였으니 롱폼 영상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서 만든 영상이죠. 그런데 생각만큼 효율적이지는 않더라고요. 편집에 드는 공수도 그렇고요. 아무래도 우리가 잘하는 건 숏폼이 맞겠구나 싶어서 결국 다시 숏폼으로 돌아왔죠.

요즘 10·20대 세대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맥락 중심보다는 직관적인 콘텐츠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타이섭님의 콘텐츠도 서사보다는 직관성을 중요시한다고 생각했고요.
맞아요. 어쩌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집중력의 영향도 좀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세대이기도 하고, 저희보다 더 이른 나이에 숏폼을 접한 세대니까요. 오래 봐야 이해할 수 있거나, 여러 콘텐츠를 봐야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콘텐츠들에 쉽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이번 분기에는 ‘스니펫’이라는 용어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고 있어요. 하나의 완성된 포맷을 갖추기 위한 콘텐츠의 최소 조건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죠. 스토리가 없어도 콘텐츠가 성립되는 거고요.
요즘 친구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은 확실히 그런 경향이 있다고 봐요. 저희는 ‘낀 세대’라고 생각하거든요. 긴 콘텐츠도 볼 수 있고, 숏폼도 즐겁게 소비할 수 있죠. 그런 과도기를 겪었던 세대로서 이런 현상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요.

그런 부분을 파악하고 계셔서인지, 타이섭님은 ‘시리즈물’에 대한 욕심은 딱히 없어 보여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제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시리즈물을 배제했다기보다는, 제가 시리즈를 만드는 걸 어려워하는 이유가 더 컸어요. 차라리 주변에서 유행 중인 밈을 패러디하거나, 그때그때 재미있어 보이는 상황을 연출해서 아이디어를 녹여 찍어 보는 게 오히려 제 작업 방식에 더 맞다고 생각했죠.

타이섭님의 콘텐츠 중에서도 틱톡 유저들이 가장 크게 반응하는 콘텐츠는 어떤 부류인지도 궁금해요.
제가 변장하고 나타나는 콘텐츠를 좋아해요. 그 캐릭터가 꼭 태순이가 아니어도 그렇더라고요. 최근에는 치마를 입고 걸스데이의 〈Something〉에 맞춰 춤을 추는 숏폼이 반응이 좋았어요.

그런 콘텐츠가 흥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단순히 제 생각이긴 한데, 처음 봤을 때 눈에 딱 박히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한 번 보면 잘 잊히지 않는 이미지잖아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요즘 친구들은 서사나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콘텐츠에 굉장히 엄격한 경향이 있어요. 저는 그래서 반대로 ‘첫 3초’ 안에 눈을 사로잡으려고 하죠.


타이섭님의 콘텐츠나 캐릭터가 다른 콘텐츠에서 언급되거나 패러디되는 경우를 보신 적이 있나요?
졸업사진으로 유명한 모 고등학교 친구들이 졸업사진을 찍을 때 앞치마를 사서 제 캐릭터를 똑같이 연출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신기하게도 태순이를 이루고 있는 몇 가지 요소를 분해해서 언급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예컨대 태순이 안경과 똑같은 점눈 안경이 나오면 저를 언급한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장기적으로, 그리고 당장 올해의 계획도요.
팬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소식일 수 있지만, 이제 부캐 활동을 슬슬 그만둘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콘텐츠 유행의 흐름상 부캐 열풍은 이제 시들해지기도 했고, 요즘은 크리에이터 본인을 브랜딩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부캐를 하나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서사를 쌓아 나가야 해요. 낯선 부캐에 적응하기 위해 꾸준히 콘텐츠를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소모적인 시대가 된 거죠. 부캐가 너무 많아지기도 했고요. 이제는 태순이가 아닌 크리에이터 윤태섭으로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려고 해요.

2026년에는 ‘겁을 내지 말자’는 게 목표입니다. ‘혹시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이유로 주저하면서 시도하지 못했던 콘텐츠들이 꽤 있거든요. 올해는 하고 싶었던 걸 마음껏 해 보려고요. 모두의 행복이 중요하잖아요. 제 행복도 좀 챙겨 나가야죠.(웃음)


‘즉각적 임팩트’ 구조에 최적화된 Z세대의 콘텐츠 소비
‘Gen Z Media Consumption 2025’ 연구에 따르면, Z세대는 리얼·쇼츠 등 짧고 직관적인 포맷을 선호하며, 이러한 포맷이 이들의 정보 탐색 방식과 미디어 태도, 소비 습관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는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Z세대의 미디어 이용 습관과 더불어, 빠르고 ‘강렬한 콘텐츠 조각(Impactful snippets)’을 선호하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긴 서사보다 빠른 판단을 우선하는 인지 구조의 변화를 시사합니다.(전문 읽기)

서사를 견디지 않는 세대의 ‘하이라이트 중심’ 소비
Deloitte의 ‘Digital Media Trends 2025’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는 배속 시청과 하이라이트·클립 중심의 소비 방식에 가장 익숙한 세대로 분석됩니다. 이들은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기보다는, 요약된 장면이나 핵심 포인트를 통해 빠르게 판단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서사를 감상하는 방식보다, 즉각적으로 이해 가능한 결과물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인지 구조가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전문 읽기)

정체성마저 ‘결과값’으로 소비하는 자기 PR 방식
브랜드 전략 컨설턴트 유진 힐리가 『The Guardian』에 기고한 칼럼은 Z세대의 SNS 사용 환경을 ‘끊임없이 관찰되고 평가되는 구조’로 설명합니다. 그는 SNS가 감시와 관찰의 공간으로 기능하며, 그 안에서의 ‘진정성’은 구조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을 서사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타인에게 어떻게 인식될지를 기준으로 즉각적인 이미지와 태그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는 자아를 ‘과정 중인 이야기’가 아닌, 즉시 판별 가능한 ‘결과값’으로 제시하려는 Z세대의 정체성 소비 방식을 분명히 보여줍니다.(전문 읽기)



지금까지 살펴본 스니펫 모드는 결국 하나의 현상으로 수렴합니다. 맥락은 줄이고, 임팩트는 키우며, 조각을 재조립해 유행을 만드는 방식이 Z세대·알파 세대의 콘텐츠 소비 리듬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스포일러로 콘텐츠를 홍보하는 시대
- 예고편처럼 ‘핵심을 감추는 방식’보다, 하이라이트와 결론을 먼저 제시하며 유입을 유도
- 고점을 먼저 경험한 뒤, 흥미가 생기면 나머지 서사를 보충하는 ‘결기승전’ 소비 방식이 보편화

2. 맥락이 생략된 챌린지 문화
- 의미나 출처보다 리듬·동작·표정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먼저 전염되며 확산
- 맥락이 없어도 참여 가능한 구조가 국경과 언어 장벽을 넘는 글로벌 유행을 형성

3. 결과 위주의 정체성 소비
- 경험과 과정을 설명하기보다, MBTI·취향·코어 같은 직관적인 라벨로 자신을 제시
- 구구절절한 서사 대신, 한 번에 인식 가능한 ‘인증된 스니펫’이 자기 PR의 핵심 도구가 됨

4. 재사용과 확장에 최적화된 스니펫
- 스니펫은 특정 시공간에 묶이지 않고, 코드 조각처럼 어디에든 끼워 넣을 수 있는 모듈로 작동
- 맥락이 제거된 대신 재사용성과 확장성이 커지며, 재조합을 통해 새로운 유행이 창조됨

콘텐츠가 더 작은 조각으로 분열되는 '스니펫'의 시대를 곧 ‘서사의 멸종’으로 단정지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전문가들은 쉽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시한 박사는 “서사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 서사의 형식이 바뀐 것”이라고 말하며, 지금의 흐름을 완결형 이야기보다 스토리의 파편을 운용하는 시대로 설명합니다. 민병운 교수 역시 1시간짜리 서사가 1분짜리 영상 60개로 쪼개지는 구조를 언급하며, 숏폼이 콘텐츠의 흐름을 주도하더라도 롱폼은 스니펫으로 유입된 유저를 락인시키는 역할로 남아 있을 것이라 예측합니다.

결국 스니펫 모드는 ‘이야기가 사라진 시대’라기보다, 이야기가 작동하는 단위와 순서가 재편된 시대를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이러한 이야기 재편의 시대의 중심에는 Z세대의 콘텐츠 소비 성향이 있습니다. 이재흔 연구원은 현재의 콘텐츠가 숏폼과 롱폼으로 양극화되고 있는 이유가 상황에 따라 ‘찍먹’과 ‘디깅’을 유연하게 오가는 Z세대의 콘텐츠 소비 성향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대 트렌드의 시대에서 우리는 지금의 트렌드가 무엇인가에만 집중해 왔습니다. 트렌드가 분열되고, 작은 트렌드가 산재하는 시대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트렌드인지'를 파악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트렌드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스니펫은 이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틱톡은 이 스니펫들이 생성되고 결합되며 확산되는 과정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플랫폼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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